김명수의 여당 ‘눈치 보기’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2-04 10:45:36
어쩌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이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임 부장판사를 탄핵하려는 집권 여당의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게 4일 공개된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까닭이다.
이로 인해 판사들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대법원장이 사법 독립성을 지키긴커녕 사법부를 정치화하는 데 앞장선 꼴이니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실제로 판사들 사이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야말로 탄핵감이라거나 과거 같으면 벌써 대법원장 물러나라고 연판장을 돌렸을 것이란 소리가 공공연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대체 김 대법원장이 작년 5월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할 당시 두 사람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던 것일까?
그때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이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표 반려 사유에 대해선 두 사람의 말이 다르다.
대법원은 전날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 대법원의 이 같은 해명은 사실일까?
아니다. 명백한 거짓이다.
한마디로 임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려는 여당의 눈치가 보여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 수장이 앞장서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기는커녕 아예 대놓고 입법부 눈치를 보았다는 점에서 그는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
특히 가장 정직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법원장이 면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대법원은 국회에 제출한 답변 자료를 통해 임 부장판사가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역시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 면담 전에 (김인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한 뒤, 면담에서 대법원장에게도 보고했으며, 사표는 현재 대법원이 보관 중이라는 게 임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가 이날 오전 대검찰청에 김 대법원장을 명예훼손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이 고발장을 접수하고 사건을 수사 부서에 배당한다면 김 대법원장은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시민단체는 “더불어민주당이 판사 탄핵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임 부장판사를 탄핵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건 사법부를 특정 정치세력의 제물로 갖다 바친 반헌법적 폭거”라며 “특정 정당의 앞잡이가 되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김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만 남았다.
사법부를 입법부의 ‘졸(卒)’로 격하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든지, 아니면 판사들의 연판장에 의해 끌어 내리는 수모를 당하든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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