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거버넌스] 서울 중구, 전국 지자체 최초 '동(洞)정부' 사업 큰 성과
洞에 주민자치·복지분야등 권한 이양
15개동 주민총회 열어 참여예산 결정
주민들 직접 투표로 사업 179건 선정
예산 122억 편성··· 전년比 37배 껑충
여영준 기자
yyj@siminilbo.co.kr | 2020-09-03 12:45:07
[시민일보 = 여영준 기자] 서울 중구(구청장 서양호)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동(洞) 정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는 지난해부터 각 동에 예산편성권을 부여해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동정부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구는 면적 9.96㎢, 인구 12만6000명으로 서울시 자치구 평균면적 24.21㎢, 평균 인구 38만9000명과 비교하면 작은 지역이다.
덕분에 ‘풀뿌리 민주주의’을 정착시키기에는 적합한 여건이라는 게 구의 설명이다. 이는 구가 민선7기 9대 전략과제 중 하나로 '동정부'를 채택한 배경이다.
여기에 공공서비스에 대한 주민들의 수요가 시설 중심에서 복지, 교육, 문화, 건강 등 콘텐츠로 변화하는 추세도 한몫 했다.
<시민일보>는 동네에 필요한 사업에 대해 주민이 직접 제안하는 '동정부' 사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 주민의 삶과 생활을 바꾸는 담대한 실험
동정부는 행정 혁신으로 주민의 삶과 생활을 바꾼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구(區)는 연결, 기획, 지원 등 최소 기능을 남기고, 동(洞)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바탕으로 동은 주민자치, 사회적경제, 복지건강, 일상서비스 분야를 맡고, 구는 권한이양, 공공서비스 재설계, 생활 SOC 구축에 주력하게 된다.
특히 생활 SOC는 기존 공공서비스 인프라를 복합화하고 재배치해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목적을 뒀다.
동 조직도 개편됐다. 2019년 70개 구 사무가 동으로 이전했고, 동 정부 인력도 42명 증원했다. 중구 15개동의 조직을 39개 팀에서 44개 팀으로 증설하고 기존 동 조직의 이름도 동 정부 정체성에 맞춰 동정부1팀, 동정부2팀, 동정부복지팀으로 변경했다.
동정부2팀은 일상민원을 처리하고 동정부1팀은 동별 전략사업, 주민자치회 구성, 사회적일자리, 문화축제 등의 사업을 맡는다. 구는 2018년 준비기간을 거쳐 2019년 동 정부 1기를 선포하며 3월 로드맵 수립, 동 정부 현장회의 등을 실시했다.
■ 사업제안, 주민총회… 주민들이 만든 예산
구는 동정부 정착의 필요충분조건은 주민들의 민주적 역량이라 진단했다. 동 정부 사업의 목적이자 수단인 셈이다.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구는 주민의 10%를 민간파트너로 양성해 기존 주민자치 기구를 발전시켜 주민들의 실질적, 일상적 참여가 열려있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2019년에는 주민자치학교, 마을리더십 학교, 중구형 사업을 위한 에너지 학교, 걷기 학교 등을 다양한 주민 역량교육 사업을 펼쳤다.
또한 동별로 주민자치회준비위를 구성하고, 지난해 7~9월, 2020년 사업제안을 받았다(총 905건, 예산 419억원 접수). 이어 같은해 9월28일~10월11일 주민참여예산 결정을 위한 주민총회가 15개 동에서 각각 열렸다.
이 중 주민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해 179건이 선정됐고, 2020년 주민참여예산으로 122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2019년에 비해 37배나 증가한 금액이다.
이는 행정안전부 주관 '2019년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 종합 평가에서 민의 참여수준 및 권한, 주민참여 활동 지원, 발전 가능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전국 243개 자치단체 중 기초자치단체 부문에서 최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된 배경이 됐다.
아울러 한국자치발전연구원(행정안전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이 주관하고 한국지방자치학회에서 후원하는 '2020 대한민국 자치발전 대상' 기초단체장 부문 수상자로 서양호 구청장이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자치발전연구원은 "주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행정단위인 동으로의 권한 이양을 통해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있는 동정부 사업을 높이 평가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20년 예산편성 관련 주민총회를 거쳐 가장 높은 표를 획득한 사업은 동별로 ▲소공동-골목가꾸기 사업 ▲회현동-남산 산책로 조명개선 ▲명동-명동경로당 화장실 정비 ▲필동-通(통)統(통)마을환경 만들기 ▲광희동-동대문관광특구 및 중앙 아시아거리 가로변 쓰레기통 설치 ▲을지로동-예술이 흐르는 을지로 만들기 ▲신당동-쓰레기 무단투기 방지 그린카펫+고보조명 ▲다산동-지역아동센터 환경개선 지원 ▲약수동-노약자를 위한 무장애길(계단 없애기, 엘리베이터 설치) 조성 ▲청구동-골목길 환경개선사업 ▲신당5동-다산어린이공원 재생 프로젝트 ▲동화동-스노우 멜팅시스템 설치 ▲황학동- 안전한 황학동 만들기 ▲중림동-비탈길 열선포장 등을 통해 보행자도 운전자도 안전한 이면도로 만들기 등이 있다.
구는 올해도 2021년도 주민참여예산 편성을 위한 주민제안사업 접수를 시작했다. 동네 발전을 위해 예산에 반영을 원하는 사업이 있다면, 해당 동 거주민은 물론이고 직장인, 학생 등 누구나 자유롭게 오는 18일까지 제안할 수 있다. 제안 방법은 관할 동주민센터로 직접 하거나 구청 공식 모바일 메신저인 U-행복소통으로 서식에 맞게 작성해 사진 촬영 후 전송하면 된다.
■ 동정부가 쏘아올린 약수동 마을마당 엘리베이터
중구 약수역에서 금호터널 방면 동호로 좌측 옹벽에 약수동 마을마당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내년 하반기에 들어설 예정이다.
구릉지 이동편의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 주민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추진 중인 사업이지만, 그 뿌리는 동정부 사업에 있다는 게 구의 설명이다.
공모사업의 최초 제안자는 75세의 유 모 할머니다. 무릎이 좋지 않아 걸음이 불편한 유씨의 집은 중구에서 지대가 높기로 유명한 약수동 마을마당 인근에 있다. 지하철과 근처 상가를 이용하기 위해 할머니가 주로 이용하는 길은 젊은 사람도 버거운 가파른 계단이다.
유씨 집이 있는 구릉지 인접 세대수는 약 750세대다. 88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65세 고령자가 1550여명에 달한다.
엘리베이터 설치 사업은 동주민센터를 찾은 유씨가 약수동장에게 털어놓은 근황 얘기에서 출발했다. 유씨는 "집도 높은데 있어서 시장 보거나 지하철 타려면 계단으로 가야 하는데 무릎이 아파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며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이 죄다 노인네들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거길 오르내리는데 에스컬레이터가 놓이면 참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때마침 2020년 동 주민참여예산 편성을 위한 주민제안사업 접수 무렵이었고,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약수동장이 유씨에게 사업으로 제안할 것을 권했다.
이어 주민센터 직원들이 유씨의 제안을 접수하고 인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치지역을 찾아 서너차례 찾아가는 골목회의를 진행했다. 실제로 불편을 겪고 있는 노인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이동편의 시설을 원하고 있었다. 약수동 주민센터는 사업 가능성 타진 후 관련부서 검토와 주민총회를 거쳐 2020년도 동예산에 엘리베이터 설치 타당성조사 용역비 2500만원을 편성했다. 유씨의 말 한 마디가 예산에 반영된 것이다.
타당성 조사가 진행된 지난 2월께, 서울시에서 구릉지 이동편의 개선사업을 주민공모에 부쳤다. 약수동 주민센터는 타당성 조사를 기반으로 유씨와 함께 해당 공모에 접수, 지난 4월 최종 선정돼 사업비를 획득하는 한편 사업시기까지 좀 더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유씨는 "돈이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고, 될지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이랑 계단이 힘드니 에스컬레이터 같은 게 꼭 있었으면 좋겠다 얘기한 것을 주민센터에 말했을 뿐이다. 실제로 만들어진다니 신기하고 고맙다"고 전했다.
서양호 구청장은 "주민 참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동네에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제안하는 것이 주민 참여이자 주민 자치의 시작이다. 내년도 동 주민참여예산 편성을 위해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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