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트로이 목마’인가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8-18 12:50:36

  주필 고하승



지난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준석 대표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이 심어 놓은 ‘트로이 목마’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었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지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당원들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엉터리 같은 여론조사에서 앞서 당 대표가 된 까닭이다.


실제로 당시 32만8000여 명의 당원 가운데 15만 명 이상이 참여한 당원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6만1077표를 얻었으나 이준석 후보는 5만5820표를 얻는 데 그쳤다. 무려 4257표 차이로 나 후보가 앞섰다.


그런데도 승리자는 이준석이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이준석이 앞섰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심어 놓은 ‘트로이 목마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 후유증이 지금 국민의힘 내홍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민주당 지지층 등 범여권 지지층이 바라는 대로 그가 앞장서서 당내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일 ‘윤석열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준석은 ‘윤석열의 저격수’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 주고 있는 셈이다. 역선택의 심각한 후유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도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으면 ‘제2의 이준석’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즉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정의당 등 범여권 성향의 지지층이 원하는 유승민 전 의원 등 약체 야권 후보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경선 과정에서 '역선택'을 우려하며 경선 여론조사에서 여권 지지층의 역선택 방지를 지도부에 요구한 것은 이런 연유다.


그런데 서병수가 이끄는 당 경선준비관리위원회는 예비경선과 본경선 단계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말았다.


물론 추후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출범하면 경선룰을 재논의할 수도 있지만, 이준석 대표가 원하는 사람이 선관위원장이 되면 그대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표가 서병수 의원을 선관위원장으로 고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전 총장 캠프의 김병민 대변인은 "어제 지상파 뉴스에서 보도된 한 여론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국민의힘 지지층의 지지보다 범여권의 지지가 월등하게 높은 후보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라며 "범여권 성향의 전폭적인 지지가 모이는 결과를 두고, 역선택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은 유독 국민의힘 지지층보다 범여권 지지층의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승민의 경우 역선택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 유승민 지지율은 2.3%로 아예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후보 적합도를 물었을 때도 그의 지지율은 4.7%로 매우 낮았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을 포함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는 10.7%로 지지율이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역선택이 의심되는 것이다.


(이 조사는 지난 12~14일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면접원에 의한 무선 전화면접 100% 방식으로 실시 됐으며, 응답률은 21.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재형 전 원장 측도 이런 역선택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초반 윤 전 총장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처럼 보였던 최 전 원장이 최근 여론조사에선 윤 전 총장뿐만 아니라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다른 대선주자에게 뒤지는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자, 캠프 안에선 여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의심하는 기류가 더 팽배해졌다.


최 전 원장 측 전략총괄본부장인 박대출 의원은 KSOI가 16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심각한 역선택" 사례로 분석했다.


응답자 표본 1007명 가운데 민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3개 정당 지지자만 426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국민의힘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건 코미디다.


박대출 의원이 "이것은 한일 축구전을 앞두고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뽑아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일본 사람들이 손흥민 선수를 한국 국가대표로 뽑겠나"라고 반문한 것은 이런 이유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여론조사에서는 반드시 역선택 방지조항을 포함해야 한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은 여론조사를 배제하고 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투표만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그게 정당 책임정치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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