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언론 통제’…왜?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8-10 14:05:35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10일 전체회의를 열고 언론사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의에 착수했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표결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검찰 무력화를 통해 검찰이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언론중재법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려 권력형 비리 의혹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민주당의 이 같은 방침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수의 인터넷 언론사나 신규 언론사를 설립하도록 문호를 대폭하고 선택은 국민이 한다는 취지로 언론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편 것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신 갉아먹기’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실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던 정의당도 이에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며 가세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최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언론의 자유는 곧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언론개혁 입법 내용은 정교해야 하고 그 속도도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언론 통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언론중재법은 집권여당이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과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보통 시민들을 위한 언론개혁이 되어야지, 집권 여당에 최적화된 언론개혁을 추진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훼손되고, 시민의 알 권리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며 ”언론개혁의 본질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5단체도 "언론에 재갈 물리는 반(反)헌법적 언론중재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언론 5단체는 최근 공동성명서를 통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반대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반민주적 개정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번 개정안은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약하려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하나만 보더라도 과잉입법금지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특히 허위·조작보도의 폐해를 막겠다면서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한 것도 모자라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이라는 손해배상 하한액까지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상 언론사를 겁박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배임이나 횡령도 아닌 과실에 의한 손해배상액에 대해 기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한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사실상 힘없는 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행위와 마찬가지인 탓이다. 게다가 고의 또는 중과실의 입증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언론사에 두고 있는 점은 현행 민법 체계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현행법 체계에서도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선 얼마든지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명예훼손죄 등에 따른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굳이 언론중재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과거 군부 독재정권이 무력으로 언론자유를 억압했다면 지금의 여당은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행사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있을 뿐 본질은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윤호중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육참골단(肉斬骨斷·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다)의 각오로 야당의 입법 바리케이드를 넘어 신문법 등 입법 처리에도 속도를 내겠다”며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다음 달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등 7개 상임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기 전까지 입법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보도지침’을 연상케 하는 민주당의 입법독재가 섬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도 끝내 무너졌듯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 재갈 물리기로도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검수완박’이나 ‘언론 통제’로 권력형 비리 의혹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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