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 투표로 탄핵했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4-08 14:31:24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어서 그렇지, 서울·부산 시장 선거결과는 문재인을 탄핵한 거랑 똑같다.”
이는 한겨레신문 편집위원과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동갑내기 고종석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4.7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냉엄한 평가다.
그러면서 “문재인이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선거결과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그는 문 대통령의 사퇴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이번 선거는 이미 오세훈 후보와 박형준 후보의 압승이 예견된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박형준 후보가 62.67%로 압승했다. 이변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기대하던 ‘샤이진보’라는 것도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울시장 선거결과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세를 보여 왔던 지역이다.
실제로 서울 49개 국회의원 지역구 중 41개가 민주당이고, 25개 자치구 구청장 가운데 24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서울시의회는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세훈 후보가 25개 자치구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박영선 후보는 단 한 곳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지역구인 종로는 물론 박영선 후보의 지역구였던 구로구에서도 참패했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174석의 다수 의석을 보유한 데다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도 장악하고 있지만, 이번 재보선에선 호남을 제외한 전 선거구에서 대패했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이 또다시 '호남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서울 투표율은 무려 58.2%에 달했다. 물론 지난해 총선(66.2%) 때나 2018년 지방선거(60.2%)보다는 낮은 수치이지만, 평일에 치러지는 재보선임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지금까지 투표율 50%를 돌파한 광역단체장 재보선은 없었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투표장으로 달려가게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이 공천한 전임 시장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당헌을 바꿔가면서까지 공천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무공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린 그들에 민심이 분노한 것이다. 또 정권 핵심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검수완박’을 추진한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그 뒤를 이은 박범계 장관에 대해 회초리를 든 것이다.
전·월세 5% 상한선을 두는 이른바 ‘임대차 3법’을 주도한 박주민 의원이 자신은 그 두 배 가까이 올려 계약하는 위선에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 같은 자신들의 위선과 ‘내로남불’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참담한 선거결과에도 대선은 다를 거라며,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겸허해야 하는 건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야당 승리’가 아니라 ‘여당 참패’일 뿐이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실책으로 인해 얻은 승리에 불과한 것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한 선거가 아니라 정권심판의 선거, 즉 무능하고, 가증스러운 위선에 대한 심판의 선거였으며, 나아가 “이게 나라냐”라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 나라다운 나라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선거였을 뿐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선거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정은 물론 그들이 소속한 제1야당은 낮은 자세로 시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세훈과 박형준을 띄워준 민심은 언제고 다시 그 배를 뒤집어 버릴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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