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영장 심사받는 날을 정한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3-08-20 11:09:04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검찰을 향해 마치 식당을 예약하듯, 자신이 정한 날에 영장 실질심사를 받겠다면 하면 그게 정상인가.
누가 봐도 그건 비정상이다. 법치 국가에서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마치 자신이 법 앞에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 권력자라도 되는 양, 검찰을 향해 국회 비회기 중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지시 아닌 지시를 내렸다.
가관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만 그런 게 아니라 민주당이 아예 당 차원에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다.
실제로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이 대표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이후 검찰은 익명의 검사를 통해 9월 국회 회기 중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언론에 무차별로 유포하고 있다"라며 "검찰은 8월 국회 비회기 중에 신속히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바란다"라고 영장 청구 시기를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시기는 검찰이 정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도저히 빠져 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법원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청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검찰소환조사에서 서면으로 답변을 대신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니 조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증거를 보완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정말 8월에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를 바란다면, 그게 진심이라면 이 대표는 검찰소환조사에 순순히 응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조사에는 협력하지 않으면서 자시들 멋대로 8월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될 것을 바라는 ‘꼼수’ 아니겠는가.
그래선 안 된다. 검찰은 국회 회기 여부와 상관없이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후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그게 9월이든 10월이든, 국회 회기 중이든, 아니면 비회기 중이든 상관없다.
피의자 이재명 대표는 백화점 물건을 쇼핑하듯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정하는 날에만 영장심사를 받는 특권을 누리겠다는 오만한 발상을 버려야 한다.
이는 이른바 ‘돈봉투 전당대회’의 몸통인 송영길 전 대표가 반성은커녕 도리어 큰소리치며 검찰 출석조사 시기를 자기 맘대로 선정해 검찰청에 자진 출두 쇼를 벌였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게 민주당의 DNA인지 모르겠으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이 언제 영장을 청구하든 자신이 선언한 대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실질심사를 받으면 되는 일이다.
모든 국민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일반 범죄 피의자가 검찰에 특정 기일을 정해, 그날에 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제1야당 대표라고 해도 그런 특권을 누리겠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국회 비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라는 건 9월 회기 중에는 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것으로 결국 구속영장 청구 시기를 늦추겠다는 지연전술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
특히 이는 검찰이 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면 당의 분열을 위한 꼼수라 우기며 친명 의원과 개딸들을 동원해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꼼수 중의 꼼수라는 점에서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실제로 그간 이재명 대표 방탄에 앞장섰던 친명계는 불체포특권 포기의 기존 입장을 바꿔 ‘체포동의안 부결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연전술이 죗값을 치르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어도 죄를 없애는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지금 이 대표에게 적용될 백현동 의혹과 관련된 배임액에 대해 ‘적게는 200억 원, 많게는 3000억 원’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그 혐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이 검찰이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묶어 영장을 청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장이 청구될 경우 구속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진 셈이다.
그 어떤 꼼수로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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