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준석 리스크'인가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2-02-24 11:35:20
“야권 단일화 불씨가 조금이라도 살아날 것 같으면 불씨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찬물을 확 끼얹는 형국이다.”
3·9 대선을 2주 앞두고 이준석 대표의 ‘안철수 조롱’ 사태가 국민의당 전체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야권 단일화가 더욱 어렵게 꼬여버리자 여의도 정가에선 이런 평가가 나왔다.
한마디로 '이준석 리스크'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대선 후보의 '단일화 담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표는 2월초 안 후보 측에 안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한 합당을 물밑으로 제안하면서도 안 후보에게 계속해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단일화를 반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국민의힘과 정반대 행보를 보인 셈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최근 유세 버스 사고로 숨진 국민의당 선거운동원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23일엔 "국민의당에 배신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대표를 만났던 이태규 본부장이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 대표가 이달 초 비공개로 합당을 제안했다고 공개했다. 안 후보가 대선후보 직을 사퇴하고 합당하면 대선 후에 특례 조항을 만들어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안 후보의 서울 종로 혹은 부산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도 제안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 후보는 이런 제안을 하면서 윤석열 후보와 한마디 상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당 대선 후보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단일화에 대해서는 후보가 전권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합당에 관한 이야기는 당의 영역”이라며 자신은 ‘합당’ 문제만 이야기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 ‘합당’과 ‘단일화’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건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준석 대표가 이를 자기 권한이라고 말하면서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하극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안하무인(眼下無人) 식 태도가 야권후보 단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24일 새벽 SNS를 통해 "경기도 평택으로 새벽 인사 나가는 중, 무궁화호는 오늘도 달린다"라는 글과 함께 자신이 기차에 앉아있는 모습을 올렸다.
이에 '고생 많다'라는 지지 댓글도 있었으나 '오지랖 그만 떨고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담판을 짓도록 물러서 있어라'라는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대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취지의 글도 눈에 띄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준석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나경원 국민의힘 선대위 서울총괄본부장은 전날 밤 CBS라디오 '한판 승부'에서 이 대표의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나 본부장은 "제가 조언할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어쨌든 조금 자제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라고 말했다. 친박 핵심이었던 윤상현 의원도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대표의 조롱이 아니라 단일화 협력"이라며 이 대표 비판에 가세했다.
그동안 이 대표를 '정치적 미래가 밝은 보수의 큰 재목'이라고 평가했던 홍준표 의원마저 이날 소통채널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이준석의 만행이 공개됐는데 저런 대표를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한탄하자 "오버 액션"이라며 이 대표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홍 의원은 전날에도 "좀 심하다"라며 이 대표 특유의 조롱 표현에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 대표의 ‘멘토’로 불리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마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혼자 가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 위험한 착각에 빠진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후보가 경선 승리 이후 한참 주가가 오를 무렵에 후보와 갈등을 일으켜 김을 빼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추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더니 이번엔 후보 단일화에 찬물을 끼얹어 압도적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소망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도우미’ 노릇을 하는 이준석 대표, 대체 당신의 정체는 뭔가.
민주당이 심어 놓은 ‘트로이 목마’인가. 아니면 단지 그대의 정치 스승인 유승민 전 의원의 잠재적 경쟁자를 짓밟아야 한다는 계파이기주의가 발동한 것인가. 참 희한한 당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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