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청이 최근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등 다중피해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인력 422명을 보강하기로 했다. 서울·부산 등 5개 거점 시·도경찰청에 '다중피해사기수사대'를 신설하고, 전기통신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 인력도 75명 증원할 계획이다. 올해 6월 기준 피해액만 1조 312억 원에 달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지만, 냉정히 분석하면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전국에 422명을 배치한다는 것은 결국 한 지역당 몇 명에 불과하며, 새로운 범죄가 등장할 때마다 다시 인력을 재배치해야 하는 한계도 분명하다. 결국 예산과 인력에 제약이 있는 공권력만으로는 복잡다양해진 범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
민간조사의 공백 보완 기능
바로 이 지점에서 민간조사관인 탐정의 역할이 부각된다. 필자는 지난 25년간 공인탐정법 제정을 위해 국회공청회 발표 등 여러 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탐정의 제도화야말로 공권력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실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그중 하나를 보자. 지난해 투자 리딩방 사기로 3억 원의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대표는 경찰 신고 후 수사 착수까지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민간조사업체가 개별 사건에 집중해 가해자의 계좌 흐름과 재산은닉 정황을 신속하게 파악함으로써 경찰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고, 일부 피해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광범위한 조직을 추적하는 경찰과 달리, 탐정은 개별 피해자의 권리구제에 집중해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경찰과 민간이 상호 보완하는 협력 구조다.
탐정은 ‘사회의 의사’로서 경찰이 다루기 어려운 개인적‧비공개 사안을 조사하며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수행한다. 법집행·보도·권리구제라는 목적만 다를 뿐 경찰·기자·탐정의 본질은 동일하며, 탐정은 피싱 범죄부터 실종·기업비리·지식재산권 침해·보험사기·산업스파이·해외도피사범 추적까지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 공백을 메울 수 있다.
민간 역량을 체계화하는 세 가지 전략
그렇다면 민간조사의 역량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활성화할 것인가. 세 가지 전략적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공익신고 포상금 제도와의 연계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탐정들이 범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보하고, 이를 국민권익위·경찰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 내부고발자 제도처럼 회수금의 일정 비율을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체계는 이미 금융사기 수사에 막대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23 회계연도 한 해에만 약 6억 달러가 포상금으로 지급되었고, 제도 시행 이후 총 20억 달러 이상이 444명에게 지급되었다. 이런 시스템이 있기에 월스트리트의 복잡한 금융사기도 효과적으로 차단되는 것이다.
둘째, 전직 경찰관 150만 명의 수사·정보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법정 단체인 대한민국 경찰경우회 회원 수는 150만 명. 이는 국가가 가진 가장 큰 치안 자산이다. 미국에서 은퇴한 FBI 요원이 민간조사업에 참여하듯, 우리도 30여 년간 축적된 수사 경험을 민관협력 치안 체계에 적극 연결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수법 파악이나 대포통장 추적처럼 현장감각이 필요한 영역은 경험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60세 은퇴는 인생 전반전의 종료일 뿐이며, 후반전은 시니어 탐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경제적 보상을 얻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100세 시대에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가장 현명한 치안 전략이다.
셋째, 탐정 전문 교육과 자격체계를 구축해 민간조사의 질과 윤리를 표준화해야 한다. 교육·훈련 기반을 제도권 안에 구축하는 일은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뿐 아니라, 민관협력 치안 체계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선진국 탐정 제도의 성숙과 한국의 제도 공백
이러한 선진국들은 탐정 교육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은 탐정 제도를 법·교육·자격·감독 체계로 묶어 국가적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더해 조사윤리,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포렌식 등 현대적 역량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편성해 직업적 표준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인 보수교육과 면허 갱신 제도를 통해 전문성 저하와 무자격 영업을 차단함으로써 탐정 서비스의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가 유일하게 탐정학 학사학위를 배출하는 상황으로, 교육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다. 전국 경찰·보안 관련 학과는 150개에 달하지만, 탐정 분야로 진출할 공식 통로가 없어 인재가 사장되고 있다. 이는 단지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인재 낭비이자 공백 구조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1999년 이후 13차례나 공인탐정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사생활 침해 우려”를 이유로 제도화를 반대하는 견해가 있으나, 실제로는 법제화가 있어야 불법 미행·도청 등 무허가 흥신소를 통제할 수 있다. 제도적 공백이 오히려 국민 피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탐정 제도화
더 이상 탐정 제도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현대 사회의 범죄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진화하고, 오늘의 보이스피싱이 잠잠해지면 내일은 또 다른 유형이 등장한다. 경찰 인력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이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는 전직 경찰관 150만 명의 경험, 탐정학 교육을 통해 길러진 전문 인력, 공익신고 시스템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치안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1조 원의 피해 시대’, 치안은 더 이상 경찰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와 민간이 함께 대응할 때만 복잡한 범죄 환경을 돌파할 수 있다. 공인탐정법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민관협력 치안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제도적 발걸음이다. 지금이 그 문을 열어야 할 때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美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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