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권의 ‘숟가락 얹기’ 씁쓸하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5-11-19 11:58:47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국제 투자 분쟁(ISDS) 판정 취소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했다.
론스타와의 배상금 지급 분쟁에서 2억1650만 달러(약 3173억 원)를 지급하라는 선고를 뒤집고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이에 따라 론스타에 배상해야 할 3173억 원의 배상금에 더해 이자까지 약 4000억 원 규모의 지급의무가 소멸했다. 취소위원회는 또 그간 취소 절차에서 지출한 소송비용 약 73억 원 역시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30일 이내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가뜩이나 국가 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이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8일 긴급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오늘 오후 3시 22분쯤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받아 약 4,000억 원 규모의 정부 배상 책임은 모두 소급하여 소멸했다”라고 발표한 것은 그래서다. 사실 이 문제의 소관 부처는 법무부다. 따라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발표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좋은 소식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고 싶은 마음에 총리가 직접 나선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 총리의 다음 발언을 듣는 순간, 법무부 장관이 아닌 국무총리가 직접 브리핑을 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김 총리는 “그동안 법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관련 부처가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한 결과”라며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한미·한중·한일 정상 외교, 관세 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강조했다.
정말 가관이다. 이쯤 되면 가히 ‘숟가락 얹기 신공의 대가’라고 할만하다.
개그콘서트도 이렇게 웃기지는 못할 것이다.
2022년 9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890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하자 윤석열 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피 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판정 취소를 신청했다.
송기호 현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당시 “ICSID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적 결론이 판정으로 나올 가능성은 ‘제로(0)’”라며 “한동훈 장관의 설명은 국민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비서관은 지난해 8월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수십억 원, 또 앞으로 정말 수백억 원의 혈세가 들어갈 그런 잘못을 제가 지적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현역 의원이던 박용진 전 의원 역시 “법무부가 ISDS 소송으로 400억 원이 넘는 돈을 로펌에 썼다”라며 “로펌만 배 불린 행정행위”라고 질타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정부가 승소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약 4000억 원가량의 국고손실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반대했던 민주당 정권이 이제야 “새 정부가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포장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죽하면 한동훈 전 대표가 “민주당은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라”고 날을 세웠겠는가.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승소의 공을 가로채려는 민주당의 태도는 뻔뻔하다 못해 참으로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라며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건국도 이재명 대통령이 했다고 주장할 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말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재명 정부는 남의 공을 가로채려 하지 말고 스스로 치적을 쌓는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정권의 압력으로 항소가 포기돼 7400억 원가량의 공공이익이 사라졌는데도 그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윤석열 정부가 4000억 원의 국고를 지켜냈듯이 이재명 정부는 검찰의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의 손에 들어갈 7400억 원가량의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고로 환원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성과를 내라. 그러면 치졸하게 숟가락 얹듯이 남의 공을 가로채지 않더라도 국민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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