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87년 체제 종식 공약하라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12-08 11:59:00
“양당 체제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에 제3지대 세력을 규합해서 87년 체제의 종식을 위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 ‘조국 흑서’ 공동저자인 권경애 변호사 등과 함께 ‘선후포럼’을 만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8일 향후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언급한 발언이다.
87년 체제란 1노(노태우)와 3김(김영삼ㆍ 김대중ㆍ김종필)이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헌법개정에 합의하면서 구축된 체제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4ㆍ13 호헌(護憲)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해 6월 항쟁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6ㆍ29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5년단임제를 골자로 한 9차 헌법개정이 이뤄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제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만 바뀌었을 뿐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는 낡은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이 문제를 들고나온 사람은 최근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손학규 후보다.
그는 자신이 당선되면 대통령제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 불행하게 된 것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때문이라며 이를 고치는 방법은 '대통령이 앞장서 의원 내각제를 외치는 것'뿐이라는 거다.
실제 손 후보는 지난 7일 밤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자신이 4번째 대선에 도전하게 된 까닭에 대해 "대통령제를 놔두면 폐해가 더 심해질 것 같아 (선거) 당락이야 어쨌든 내가 말이라도 하고 권력 구조 개혁의 불씨라도 살려놔야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제의 폐단의 후유증을 설명하면서 "역대 대통령이 모조리 불행한 대통령이었다.대통령 두 분은 감옥에 가 있고 그전에 한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은 피격돼서 사망했고 한 분은 하와이로 망명했고, 다른 두 분은 자제분들이 구속됐다"라며 “한두 분만 그랬으면 그 사람이 잘못했구나 하겠지만 역대 대통령 모두 불행한 것은 대통령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직접 뽑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통령이 지닌 무한 권력을 없애고 분산해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헌법, 의회주의로 가자 그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양당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승자독식의 현행 대통령제는 문제가 많다.
국민갈등을 부채질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차기 대선 주자들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후보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다.
압도적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 여론이 반영된 탓일 게다. 그런데 8일 공개된 여론조사는 충격적이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라는 것이다.
인터넷매체 뉴스핌의 의뢰로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4일 전국 성인 남녀 10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야 대선후보의 지지도는 윤 후보가 45.6%,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7.7%를 기록했다.
그런데 윤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66.4%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라고 응답했다. 윤 후보의 인물 됨됨이(54.9%)나 대선 공약(49.1%), 업무 능력(18.0%)보다도 높게 나왔다.(이 조사의 응답률은 4.3%이고 표본오차는 95%의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한마디로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윤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으로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악(次惡)의 후보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이게 87년에 만들어진 대통령제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은 비록 손학규 후보 한 사람이 광야에서 외치는 요셉처럼 고독한 길을 걷고 있지만, 머지않아 제3지대 주자들은 물론 이재명 윤석열 등 패권 양당 후보들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손학규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제 폐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한만큼 윤석열 후보에게 ‘대통령제 폐지’를 공약하도록 조언하면 어떨까?
그러면 민주당도 국민의당도 아니라는 유권자들이 윤 후보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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