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역대 최악 ‘진흙탕 선거’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12-19 12:00:09

  주필 고하승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는 최선(最善)의 후보가 아닌 차악(次惡)의 후보를 찾는 유례 없는 '비호감' 선거가 될 것 같다.


실제 여야후보 본인은 물론 부인과 장모, 자녀, 형제, 조카까지 '가족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악의 '진흙탕 선거'로 치닫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대선후보가 초접전을 벌이자 '가족 검증'을 명분 삼아 네거티브전을 펼치고 있는 탓이다. ‘우리가 좋은 후보’라고 선전을 해도 모자랄 판에 '상대가 더 나쁜 후보'라는 점만 부각하려는 선거에 국민은 피곤하다.


이러다 보니 차라리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유권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참담하다.


특히 민주당은 연일 윤석열 후보의 가족 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어제는 윤석열 후보 장모 최모 씨의 압류 부동산 현황을 공개하며 윤 후보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더니 오늘은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미국 뉴욕대 관련 경력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장남 이동호 씨가 불법도박을 시작한 2019년 이후 예금이 급증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를 놓고 “증여세 탈루냐 타짜냐”고 지적하는 등 역시 이재명 후보 가족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정작 중요한 정책 검증은 뒷전으로 미뤄지고 있다.


실제로 국민은 어느 후보가 어떤 비전을 제시했는지 잘 모른다. 그걸 알려고 하지 않는 유권자들도 문제다. 패권 양당의 진영논리에 갇히다 보니, 후보들의 정책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선택하기보다는 그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 따진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에는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5월 9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자연인 문재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잊혀진 사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당장 울산시장 선거공작 의혹과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에 대해 문 대통령이 연루 의혹을 받는 만큼 수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설사 문 대통령과 같은 정당인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제왕적 권한을 거머쥔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가는 건 자신의 임기 중 국민의 지지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이게 역대 대통령의 불행을 답습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다.


사실 OECD 선진 34개국 중에서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미국·프랑스·멕시코·폴란드·칠레 등 6개국뿐이다.


정치학자인 후안 린츠는 “대통령제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도 이제는 87년 낡은 체제를 종식하고 분권형 개헌을 통해 새로운 제7공화국을 건설할 때가 됐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인은 내각제를 좋아하지만, 일반 국민은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라며 “개헌은 지금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이재명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나마 윤석열 후보는 “청와대는 축소하겠다. 내각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용하겠다”라며 개헌 없이는 불가능한 공약(空約)이라도 했는데, 이 후보는 그런 빈말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가 강한 탓일 게다.


손학규 무소속 후보가 출사표에서 “대통령제를 폐지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라고 선언한 것은 이런 연유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출사표를 던진 건 아닐 게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거대 패권 양당 후보가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깨닫고 분권형 개헌을 약속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희미한 목소리가 예수를 통해 큰 울림으로 나타났듯이 그가 던진 개헌 화두가 양당 후보를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역대 최악의 '진흙탕 선거'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는 아름다운 개헌 선거로 전환될 거 아니겠는가.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 모두 가족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도 ‘개헌’ 이슈를 띄워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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