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영장 쇼핑’은 ‘독수독과(毒樹毒果)’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5-02-23 12:08:22
형사소송법상의 증거 법칙으로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라는 게 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하여 발견된 제2차 증거(독과)의 증거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즉 ‘독이 든 나무(독수)에 열린 독 과일(독과)은 먹을 수 없다'라는 논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등에 대한 각종 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가 기각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탄핵심판에서 쓰인 증거도 '독수독과' 이론이 적용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공수처가 서부지법 영장청구 과정에서 이전 영장 기각 사유를 고의로 기재하지 않고 영장을 청구했다면 영장 효력 및 관련 증거능력 등에 하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윤 대통령의 변호인 윤갑근 변호사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가 지난해 12월 6일 중앙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과 통신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고 주장했다. 또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할 때 중앙지법에서의 영장청구 이력을 기재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사실이라면 '독수독과' 이론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처음에는 발뺌하던 공수처도 뒤늦게 압수수색 및 통신 영장청구 사실을 시인했다.
물론 공수처는 그러면서도 "기각 사유는 수사기관 중복 청구 문제였다"라며 내란죄 수사권 문제는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또 "영장 관할과 수사권에 대한 부분은 이미 중앙지법과 서부지법에서 여러 차례 영장 재판을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았다"라고도 했다.
정말 황당하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건 도둑놈이 굳게 닫힌 중앙지법의 정문을 두드려 보았는데 도저히 문이 열릴 것 같지 않으니까 담장이 낮은 서부지법의 담을 넘어가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공수처의 '영장 쇼핑'이 확인됨에 따라 '위법수사'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이로 인한 탄핵 반대 여론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급하게 윤석열 파면 촉구 집회를 연 것도 공수처 ’영장 쇼핑‘ 후폭풍을 우려한 탓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내란 종식 헌정 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촉구 범국민 대회'를 열었다. 민주당의 장외집회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이다. 당 지도부 등 의원 80여 명이 참석했고 이재명 대표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대신 소셜미디어로 지지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공수처의 ’영장 쇼핑‘ 사실이 확인되고, 그로 인해 헌재가 ’독수독과‘ 이론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로 헌재를 압박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공수처의 ’영장 쇼핑‘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산과 대구, 광주에 이어 대전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가 들불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대전에선 대통령 선거를 능가하는 구름 인파가 대전역 광장에 모여 탄핵 반대와 특히 공수처의 불법적인 '영장 쇼핑'을 강도 높게 규탄했다.
처음 집회에 참석한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으로 가지 않았다면 윤 대통령 체포와 구속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공수처의 불법적인 수사와 헌재의 불공정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200만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 유권자가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고작 8명의 헌법재판관이 5200만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려면 그 절차에 어떤 자그마한 흠결도 있어선 안 된다. 하물며 공수처의 불법적 ‘영장 쇼핑’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묵과한다면 범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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