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수치 믿지 말라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3-10-30 13:50:22

  주필 고하승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이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35%, 더불어민주당은 32%를 기록했다.

 

양당이 오차범위 내(95% 신뢰수준에서 ±3%p)에서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조사했다는 다른 여론조사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민주당이 48%, 국민의힘이 35.8%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p) 밖에서 크게 앞섰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35%와 35.8%로 두 여론조사 기관 큰 차이가 없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32%에서 48%로 무려 16%나 널뛰기하듯 차이가 났다.


과연 이런 조사 결과를 믿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조사 방법과 기간, 시간대 등에 따라 결과가 들쑥날쑥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수치만 보지 말고, 지지율 추이를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 추이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지난주 대비 국민의힘은 2%p 올랐고, 민주당은 2%p 빠지며 비록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이 역전했다. 한 마디로 국민의힘은 오르는 추세이고 민주당은 빠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반면 리얼미터 조사에선 직전과 비교할 때 국민의힘은 고작 0.6%p만 올랐을 뿐인데 민주당은 1.9%p나 올랐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볼 때 여론조사 결과는 수치나 추이를 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비슷한 기간에 조사했더라도 조사 방법, 특히 응답률에 따라 결과가 사뭇 달라지는 탓이다.


실제로 한국갤럽은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으나 리얼미터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ARS),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전화면접조사 방식의 한국갤럽 응답률은 13.6%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만큼 다양한 유권자층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반면 ARS 방식의 리얼미터 응답률은 2.4%에 그쳤다. 100명 중 고작 2~3명가량만 응답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정치에 직접 관여하고 있거나 깊은 관심을 지닌 정치 고관여층만 응답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일반 국민 여론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을 포함한 34개 국내 여론조사 업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조사협회(KORA)가 이제는 ARS를 여론조사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유다.


이렇듯 널뛰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존하는 선거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무작위 1000명이란 표본만을 믿고 전략을 수립한다면 현장 민심과는 동떨어진 전략이 세워질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본란에 인용된 설문조사의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소리다. 당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제1호 혁신안으로 ‘대사면’을 제안한 것은 현장의 소리를 반영하기보다는 여론조사 수치를 더 중시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


지금 이준석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한 당원들의 감정은 굉장히 안 좋다. 당의 주인인 책임 당원들 다수가 그와 함께 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실패해야만, 또 김기현 대표 체제가 무너져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그들은 그래서 여당에 암적 존재다. 그들은 포용의 대상이 아니라 정리의 대상이다.


그런데 여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것도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 때문에 그들을 포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혁신은 윤리위 결정을 무력화하고 모두를 끌어안고 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윤리위 권한을 더욱 강화해 징계받은 자들이 슬그머니 다시 정치를 재개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깨끗한 정치, 다시 시작하는 여당의 모습을 위해서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여당 혁신위가 해야 할 일은 잡탕밥을 만드는 ‘내부통합’이 아니라 산뜻한 ‘인적 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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