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결렬’ 선언…왜?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2-02-21 13:56:18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느닷없는 ‘야권후보 단일화 결렬’ 선언은 뭔가 석연치 않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단일화를 공식 제안하고 나선 것은 안 후보 본인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단일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받을지 말지 윤석열 후보가 직접 답을 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윤 후보는 20일 오전 10시에 직접 안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둘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안 후보는 “실무자들끼리 큰 방향을 정하고, 그다음에 후보 간 만나서 얘기하자”라며 이상하게 한발 물러서더니 그날 오후 1시 30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언하고 말았다.
단일화 룰도 일방적으로 정하고, 제안도 일방적이더니 결렬 선언마저도 일방적이다.
그러면서도 “결렬 책임은 윤석열 후보에게 있다고”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안철수 후보.
상식적이지 않은 안 후보의 이런 태도에 그를 지지하는 인사들도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안 후보 후원회장을 맡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양보할 때는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안 후보 결정이 안타깝다”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선거 캠페인을 도와온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충격적이고 의외”라며 “상대방이 못마땅하더라도 단일화 가능성을 칼같이 끊는 건 상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안 후보는 자신에게 힘이 될 우군(友軍)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셈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가벼운 입’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사실 이준석 대표는 정치 입문 10년이 넘었지만, 대통령 선거와 같은 큰 선거를 단 한 번도 치러본 경험이 없는 대표다. 자신의 국회의원 선거마저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10년 0선’이라는 불명예 딱지가 붙은 대표다. 그러다 보니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당내에서 갈등을 일으켜 감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 이 대표가 마치 안 후보를 조롱하듯 여과 없이 쏟아내는 발언들로 인해 안 후보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그 가벼운 입이 단일화에 걸림돌이 되었다면, 이 대표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말 그게 원인이라면 안 후보는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자신의 자존심보다 더 큰 문제가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받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짜 원인은 이준석의 가벼운 입이 아니라 다른데 있을 것이다.
대체 그게 뭘까?
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러브콜’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이재명 후보는 안 후보의 결렬 선언에 대해 "안 후보님의 고뇌에 공감한다"라며 "이제 더 나쁜 '묻지 마 정권교체'를 넘어 더 나은 '정치교체'가 돼야 하고, 정치교체가 세상과 시대 교체를 끌어내게 해야 한다"라고 힘을 실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안철수의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희는 안 후보가 제시한 과학기술 강국 어젠다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수용할 자세가 돼 있다"라며 안 후보를 향해 구애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의도 정가에선 민주당 비주류인 이재명 후보가 최측근 의원을 통해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와 단일화를 위해 지속적인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마당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 측과 물밑 접촉하는 ‘양다리 걸치기’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물론 이에 대해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 비주류 세력들은 예전부터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기에 관련돼서 편하게 이야기는 듣는 상황”이라고 민주당 인사들과의 접촉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핵심 관계자와 공식적인 접촉은 전혀 없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정치 언어라는 측면에서 그가 말하는 ‘인간적 교류’와 ‘공식적 접촉’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는 ‘공식적 접촉’보다도 ‘인간적 교류’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의혹들에 대해서 안철수 후보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아울러 비록 이런 참담한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윤석열 후보가 직접 안철수 후보를 찾아가 그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거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걷어차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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