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협정, ‘국회 비준’ 절차 거쳐라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5-11-18 14:33:33

  주필 고하승



2025년 10월 역사적인 한미무역협상이 타결됐다.


한국이 향후 10년에 걸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약속하고, 미국은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이 정부 1년 예산의 약 70%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투자를 한다는 것인 만큼 당연히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는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가진다'라는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국민의 뜻에 귀 기울이는 자세이다.


만일 국회 비준 동의 없이 여야가 정치적 합의만으로 이를 처리한다면 위헌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한미 관세 협상은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현행 헌법 60조는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어, 한미 간 양해각서(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이니까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비준을 하면 국제법적 효력이 생기고 구속된다"라는 이상한 말까지 했다.


이에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어서 한국이 한미협정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국회 비준을 하면 법적 효력이 발생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 것일까?


아니다.


유엔 법무담당관실은 “MOU는 기존 조약을 수정하거나 조정하는 데 자주 사용되며, 이 경우 사실상 조약에 해당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국가 원수인 양국 대통령들이 직접 서명한 한미 간 MOU는 국회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비준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자동차, 철강 반도체, 농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수준이지만 국회 비준을 받으려면 그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물가 상승 등 서민 생활에 타격을 줄 만한 수치들도 공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걸 모면하기 위한 꼼수가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어서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예상되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려다가 국가적으로 더 큰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회 비준을 받아 놓은 상태라면 아무리 협상 중 돌발요구로 악명 높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당초의 협정보다 더 많은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할 수는 없다. 국회가 비준했기 때문에 협정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고 방어하면 그만이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약화하고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위험성이 차단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논리로 국회 비준을 피하려고 든다면 한미협정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은 더욱 증폭될 것이고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경고하거니와 한미 관세 협상 MOU는 조약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런 의구심은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고, ‘100만 촛불시위’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정부와 여당은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거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말장난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당당하다면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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