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목장의 결투

고하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2-05-11 16:01:57

‘눈엣가시 같은 놈’이란 뜻으로 ‘안중지정(眼中之釘)’이란 고사성어가 쓰인다.

당나라 말엽 조재례(趙在禮)라는 인물은 송주 지방의 절도사로 있으면서 주민들을 총동원, 밭으로 나와 피리를 불고 북을 치게 하면서 남쪽지방에서 쳐들어오는 황건적 무리를 물리친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백성들을 동원하다보니 백성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영흥 절도사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송주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백성들은 만날 때마다 “놈(조재례)이 우리 송주를 떠난다니 마치 눈에 박힌 못을 뺀 것처럼 시원하구나”하고 서로 위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재례는 백성들이 자기를 욕한다는 사실을 알고 조정에 “1년만 더 송주 절도사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청을 냈다. 백성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함이었다. 가까스로 조정으로부터 1년 연임을 받은 조재례는 즉시 관내 주민들을 잡아다가 집집마다 1년 안에 돈 일천전을 바치게 하고 이를 ‘발정전(拔釘錢)’이라 불렀다.

즉 “눈에 박힌 못을 빼려거든 1천전을 내라. 그리하면 내가 깨끗이 떠나주마”라는 노골적인 행동인 것이다. 물론 그는 이렇게 해서 많은 돈을 긁어모을 수가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일년간 조재례가 모은 돈이 무려 백만관(1관은 1천전)이나 된다고 한다니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돈을 모은 조재례의 승리인가? 아니다. 조재례는 역사에 지혜로운 인물로 기록되지 않고 백성들로부터 돈을 긁어모은 부패한 인물로 기록되고 말았으니 결코 승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승리인가. 그도 아니다. 그들은 협력하여 적을 물리친 절도사를 욕하다가 집집마다 1천냥이라는 돈을 바쳐야 했으니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

지금 이와 유사한 일이 구리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박영순 구리시장이 시의원 일부가 최근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의 의정보고서를 발간, 배포한 것을 반박하자 이번에는 시의회가 박시장을 겨냥, 정당한 의정활동을 부정하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구리시 의회에서 5명의 의원이 ‘토평-인창지구 택지개발 등 각종 사업에 대해 특혜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의정보고서를 돌리자 박시장이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를 낙선시키려는 음해가 있다”며 “이들 시의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에서 ‘장군’을 외친 셈이다. 그러자 시의회에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법에 보장된 의정보고서 제작과 배포를 두고 선거법 위반 운운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멍군’을 외친 셈이다.

심지어 어느 시의원은 ‘OK목장의 결투’처럼 박시장에게 “사거리에서 결투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시민들이 “누구를 위한 시이고 누구를 위한 의회인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구리시장과 시의원간에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안중지정(眼中之釘)’과 ‘발정전(拔釘錢)’의 싸움 양상을 닮았다. 그렇다면 그 승자는 누구인가. 답은 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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