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蜜腹劍 후보
편집국장 고하승
시민일보
| 2002-06-05 16:30:40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 하지만 은근히 돌아서서는 남을 끌어내는 이임보(李林甫)와 같은 인물을 지칭하여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고 한다.
중국 역대 왕조 가운데 뱃속이 검고 책략에 뛰어난 궁중의 정치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이임보란 작자다.
이임보는 환관에게 뇌물을 바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당현종(唐玄宗)의 총애하는 왕비에 들러붙어 출세의 실마리를 잡은 사람이다. 그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각종 험담을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도 했다.
어느 날 현종이 문득 생각이 난 듯 이임보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정지(嚴挺之)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를 불러 다시 썼으면 하는데….”
당시 현종이 찾은 엄정지는 강직한 인물로 이임보의 시기를 받아 지방으로 쫓겨나 있었다. 물론 엄정지는 자신이 쫓겨난 것이 이임보의 농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임보는 ‘중앙인물들도 많은데 굳이 지방인물을 찾아 무엇에 쓰려는지 모르겠다’며 잔뜩 불만을 품었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은 채 엄정지의 아우 손지(損之)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당신 형님을 매우 좋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폐하를 한번 배알할 기회를 만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폐하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선 신병을 치료할 겸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소문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손지는 그 말을 듣고 그의 형에게 즉시 연락, 상소문을 올리도록 했다. 그러자 상소문을 받아든 이임보는 현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엄정지는 늙고 병들어 직책을 수행하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서울로 불러 한가한 직책을 맡기시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현종은 멋도 모르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이임보의 의견을 따랐다. 뒤늦게 이임보의 농간임을 눈치챈 엄정지는 그만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지금 지방선거전에 뛰어든 인물들을 보면 모두가 웃는 얼굴들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각종 정당에서는 가장 따뜻한 사람들만 골라서 후보로 내세운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추악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후보로 나선 곳도 많다. 자신과 출신지역이 다르다는 가당찮은 이유하나만으로 인사에 불이익을 주어 무수히 많은 공무원들을 울린 사람이 있는가하면,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자신의 외유에 ‘펑펑‘낭비한 사람도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
심지어 주민들의 머슴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그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대상으로 각종 송사를 제기한 단체장도 있다. 세상에 주인을 고발하는 머슴도 머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파렴치한 후보가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연신 웃고 다닌다. 그리고 ‘한표’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간신 중에 간신인 이임보의 ‘구밀복검(口蜜腹劍)’을 닮았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공천을 준 어리석은 사람은 양귀비에 홀려 정사를 소홀하게 한 현종을 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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