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 메밀꽃 군락‘황홀경’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 봉평 메밀밭
시민일보
| 2002-08-28 16:46:16
‘HAPPY 700 강원도 평창’.
강원도 평창을 이야기할 때는 인간의 몸에 가장 좋다는 해발 700고지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HAPPY 700’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평창은 한여름에도 모기 같은 유해 곤충이 없고 깊은 산과 맑은 계곡을 군데군데 끼고 있어 이미 국내 최고의 휴양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동고속도로가 관통하는 평창의 한쪽 귀퉁이에는 ‘봉평’이 자리하고 있다. 쑥 봉(蓬)을 쓰는 지명으로 미루어보아 예로부터 이곳은 타고난 허브의 마을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지금이야 ‘허브’라는 낯선 낱말을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옛날에는 그런 외래어가 있었을 리 만무하고 그저 몸에 이로운 약풀이려니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지천으로 깔린 약풀들을 잘 활용하며 친숙하게 지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게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이 곳을 배경으로 탄생되면서 봉평은 문학의 고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9월로 접어드는 초가을의 봉평은 온통 새하얀 메밀꽃으로 일대 평야가 뒤덮인다. 4월부터 시작된 감자 농사가 일찌감치 마무리되고 7월말 경에는 메밀 꽃씨를 뿌리게 되는데 이것이 9월초에 이르러 환상적인 개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 하나 더듬어 보면 수수하기 이를 데 없는 메밀꽃은 군락을 이루면서 황홀한 장관을 이룬다.
이런 이색적 풍광이 알려지면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렇지만 이효석 작품의 배경처럼 숨이 막힐 듯한 그 메밀꽃밭을 볼 생각이면 달빛이 환한 밤길을 더듬어 찾아가 보는 게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장돌뱅이 허생원 일행이 봉평장에서 별 재미를 못보고 잔뜩 기대를 안고 대화장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음직한 그 길가엔 환한 가로등 하나가 초병(哨兵)처럼 메밀꽃 무리를 지켜주고 있다. 달빛이 없는 날엔 아쉬운 대로 자동차 라이트라도 비추어 보자. 초가을 바람에 몸을 맡긴 메밀꽃 무리가 펼치는 밤의 군무를 훔쳐볼 수 있다.
달빛 머금은 메밀꽃무리를 본 사람이라면 날이 밝았을 때 펼쳐진 꽃밭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호젓한 밤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고 밀려드는 인파와 빼곡이 자리한 도로변의 차들로 밤사이 유원지로 전락한 모습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같이 달려와 아침나절에 이 곳에 도착한 여행객들에겐 밤사이 펼쳐진 황홀한 장관을 못 본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성과 함께 연신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소리. 무거운 장비를 둘러맨 전문 사진작가들 무리도 보이고 나무그늘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화가들도 보인다. 나이 지긋한 노화가(老畵家)의 모습은 메밀꽃밭과 함께 그림책 속 장면으로 동화되기도 한다.
이효석 생가에서 막국수를 판다고 해서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 집은 이효석 생가가 아니고 그 터가 생가터일 뿐이다. 이효석 생가 터를 소유하고 있는 주민이 식당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군에서는 그 터를 확보하여 생가를 복원할 계획이 있지만 진도가 부진한 상태이다. 그 대신 메밀꽃 밭 옆으로 소설 속의 물레방앗간을 조성해 놓았다.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물레방앗간은 물레방아 고유의 기능을 벗어나 기념촬영 배경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산 이효석 생가 일대는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장돌뱅이의 삶과 사랑, 혈육과의 만남을 한편의 서정시와 풍경화로 일궈낸 소설의 무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실존인물 허생원이 살았던 집, 허생원이 나귀 등에 물건을 싣고 나가 팔았던 봉평장터, 허생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들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너던 장평냇물, 허생원이 봉평 미인과 사랑을 나눴던 물레방앗간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효석문화제가 오는 9월6일부터 15일까지 봉평면 일대에서 열린다.
6일에는 효석백일장, 사진촬영대회, 향토음식 경연대회, 어린이 뮤지컬, 문학심포지움, ‘메밀꽃 필 무렵’ 영화 상영이 열리고 7일에는 사진 촬영대회, 가장행렬, 효석문학관개관 및 향토자료관(메밀관)이 개관을 한다. 이어서 제3회 이효석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의 밤이 메밀꽃밭 속에서 펼쳐진다.
축제 셋째날 8일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되었던 장터재현과 메밀음식 개발시연, 전통민속놀이, 허생원 목침뺏기등이 저녁시간에는 5만평의 메밀밭 위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까지 가야한다. 장평에서 나와 봉평 방향으로 직진하면 봉평읍내가 나
온다. 읍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메밀밭과 이효석 생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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