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 생각나는 이색희극

◆거기◆

시민일보

| 2002-10-14 16:09:24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극단 차이무의 여덟 번째 공연 ‘거기’는 그동안 보여줬던 작품과는 다르다. 대학로의 히트작 ‘늙은 도둑의 이야기’, ‘비언소‘, ‘돼지사냥’등 관객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작품들에 비해 진한 희극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구수한 내용과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작품의 구성은 단조로울 정도로 간단하다. 관광철이 지난 강원 시골의 술집에서 술마시며 안주 삼아 얘기하는 귀담.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언제 사람들이 많았냐는 듯 썰렁한 곳으로 변해 버린 부채골. 이 곳의 토박이 세 남자가 하나둘 병도의 술집으로 모여든다.

장우와 진수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술집에서 잡다한 얘기를 하던 중 서울서 이사 내려온 김정이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일찌감치 투기로 돈을 모은 춘발이 김정의 집을 소개하고 친근함을 보이며 병도의 술집으로 들어서자 노총각 장우,진수,병도와 바람기 많은 기혼자 춘발은 김정에게 지나친 배려를 하며 관심을 끌려 애쓴다. 술안주 삼아 시작된 장우의 귀신 얘기가 춘발에서 진수, 김정의 경험담까지 전개되고 오싹한 분위기가 극장을 감싼다.

술 냉장고, 두어개의 테이블, 기다란 바에 화장실 표지까지 술집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무대에는 극장에 왔는지 술집에 왔는지 착각할 정도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맥주병과 구운 오징어 냄새는 맥주 한잔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관객을 무대(술집) 깊이 끌어들인다.

가볍게 시작된 배우들의 이야기는 점점 취해갈수록 무겁고 무서워진다. 대사의 절반이 독백으로 진행되지만 지루할 듯한 분위기를 다른 배우들의 리액션으로 반감시키고 강원도의 어눌한 사투리는 친근감으로 다가와 관객에게 가벼운 웃음을 안겨준다.

다섯 명의 배우가 펼치는 앙상블 연기는 특별한 사건없이 밋밋하게 흘러가는 극적 구성을 감싸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실제 술을 마시며 연기하는 배우들은 특별한 행동도 없이 대사만으로 관객을 집중시키고 배우의 감정 흐름을 따라오게 만든다.

더블 캐스팅이지만 요일마다 교체 출연해 32가지 버전으로 공연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이상우 연출. 원작 아일랜드의 코너 맥퍼슨 ‘the Weir’. 11월 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공연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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