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5-28 17:25:26

(9) 銃대 멘 젊은 ‘괸당'들

세불곶 포구를 출발한 두사람은 자전거를 ‘정의논막’쪽 큰길 위로 몰았다. 바다를 뒤로하고 자전거는 아득히 한라산을 올려다보며 널따란 평야를 가로지른 또 하나의 갈림길인 ‘말길’로 꺾어들었다.

밭은 하나도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논과 논만이 질펀하게 펼쳐진 제주땅 유일의 ‘만경들판’이었다.

비탈진 길목을 기어오르자, 한남마을 한쪽 모서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시야를 가득 메꿔나갔다.

정든고향 한남마을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한폭의 초대형 정물화(靜物畵)였다. 아, 자랑스런 우리 한남마을! 제주땅에서 질 좋고 기름진 논과 밭, ‘여주-이천쌀‘ 저리가라할 윤나는 멥쌀과 멥쌀보다 맛좋은 보리쌀 생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자리돔이 떼지어 서식하는 풍요로운 수산자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민물과 바다를 넘나드는 은어(銀魚)떼의 보금자리로 제공되어지고 있는, ‘한남천’과 ‘악근천’ 하류가 마을의 동녘귀퉁이를 두가닥으로 수놓고 있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는 사실도 특기할 대목이었다.

언제 보아도 유리알 같이 맑고 얼음장보다 차가운 ‘악근천’과 ‘한남천’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물줄기는, 고향땅의 젖줄이라고 생각되어 두사람은 푸근함과 흐뭇함을 만끽 할 수 있었다. 잠시후 자전거는 ‘켓담‘으로 일컬어지는 마을 외곽지대로 달려 나왔다.

“달미동에 같다오다 도선마을에 들러서 김순익군을 만나봐야겠지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구…”

악근천 다리 위를 지나 동쪽으로 일주도로 위를 한참 달려나갔을 때, 조용석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기다렸다는 듯 고정관도 입술을 들먹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도선마을로 달려가고 싶네만, 달미동쪽이 우선이야. 이만성군을 만나는 일이 다급하다구.

쉽게 포섭이 되어야 할 터인데…. 우리와 손만 잡아 준다면 천하 제 1의 3인방(幇)은 ‘천하 통일’을 밀고 나가 볼 수도 있을텐데 말야!”

“저도 동감입니다만, 김순익도 대어(大漁)는 못 되어도 중어(中漁)는 된다고 보는데요! 우리가 당장 끌어들어야 할 A급 대상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친일파-민족반역자 때려잡는 데 톡톡히 한몫할 적임자라고 봐요. 형님 생각은 어떠신지…?”

“자네 말대로 김순익도 A급대상임엔 틀림없어. 그 친구는 아버지 원수를 갚기위해 엄청난 모험을 한 효자중의 효자잖아. 친일파-민족반역자와 끄나풀들이야말로 30만 도민의 공적(公敵)이 아니냔 말야.

그 공적들을 소탕하기 전엔 광복(光復)을 논할 수 없다구. 김순익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해.

그 친구는 의사(義士)감일세, 공적들을 소탕하는데 총대 메고 특공대장역을 맡아야 옳은 믿음직스런 사나이 틀림없어, 우리가 포섭을 하자구! “고정관은 ‘포섭’을 되뇌며 쩝쩝 입맛을 다졌다.

“아직도 한참 가야겠지요? 엎드리면 코가 닿을 곳인데도 기목이 가파르고 험난해놔서…”

조용석은 힐끗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말했다. 4시(16시)가 가까워지고 있엇다. 자전거는 끙끙거리면서도 후덥지근한 바람을 가르고 곡예하듯 요리조리 삐딱거리며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자리돔이 변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펀뜻 풍겨 나오고 있으니…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자리돔 냄새인가? 변질되면 곤란한데!”

“틀림없네요. 날씨가 무더운 현도 아닌데, 변질되면 술안주감으로는 쓸모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선배의 입장에서 모처럼 선심한번 써 보려고 한 것이 물거품 되는 건 아닌지, 약간 걱정이 되는구만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지는 않을 테니 과히 걱정 말게!”

“초고추장을 준비하고 왔더라면 도중하차해서 우리가 먼저 포도청에 상납하고 가도 되는건데…”

조용석은 히죽 웃고, 아쉬운 듯 군침을 꿀껏 삼켰다. 고정관이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 돌려 대바구니쪽을 바라보았다. 군침 돋우는 물건들이 소리없이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길이 7∼8㎝, 너비 4∼5㎝ 정도의 고만고만한 흑갈색 생선들.

옥도미 못지 않게 구수한 맛을 지닌 이 자리돔들은 주로 한남마을 앞바다에서 잡히는 황금어종이다. 구이나 찜도 좋지만, 물회감으로서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단골메뉴로 꼽아왔다.

‘달미동’ 사람들도 오죽이나 반기며 군침 흘릴 것인가?

이윽고, 자전거는 신장로에서 방향을 바꾸어 ‘운천동’ 안으로 꺾어들었다.

운천동을 벗어나서 2∼3분쯤 안으로 달려나가면 종착역인 ‘달미동’은 두사람을 반겨 맞을 참이었다. 이만성-두사람은 입속으로 이만성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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