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7-08 18:38:29

(6) 7년 가꾼 순정의 꽃
“서귀포쪽으로 내뺐어요. 그러나 괴한들의 행선지가 서귀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서귀포를 거쳐서 제주성내로 갈 수도 있으니까요”

이만성은 몸을 떨며 떫은 목소리로 대꾸했다.네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형님과 이 조용석이가 그토록 두려운 존재란 말인가? 신문에 보도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두 사람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조용석이 어깨에 힘을 주고 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게걸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글세. 아무리 무정부상태, 무법천지라고 한들, 한남마을 사람이 천인공노할 음모를 꾸몄을 까닭이 없지, 그 점만은 분명히 밝혀졌으니 다행인 것 같군!”

고정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문제의 협박편지를 이만성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침입한 괴한들에 의해 두 사람의 어머니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이 결박된 채, ‘괴팡’안에 갇혀 있었던 사실을 들려주었다.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달아났었군요. 두 어머님들께서 얼마나 무서운 곤욕을 치르신 겁니까? 유명한 아드님들을 두신 덕분으로 여기시고, 과히 고통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평범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돈을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천금보다 값진 경험을 하신 셈이니까요”
이만성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유머 섞인 말솜씨로 두 어머니를 위로했다.

“돈을 주면서 애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어려운 일을, 친구들을 위해 자진해서 해 주었는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좋을지 맘속으로 고마워할 뿐이라오”

고정관의 어머니 윤여사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백골난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군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이지 뭐야. 너희들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은 친구임과 동시에 생명의 은인이라는 점을 말이다”

조용석의 어머니 고여사는 한 술 더 떠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님들 이러지 마십시오. 괴한들을 붙잡지도 못한걸요. 이미 일을 저지르고 내뺀자들인 줄 알았던 들, 한가롭게 미행만 할 것이 아니라 도중에 덮쳐서 끌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우두머리 잡는 데만 혈안이 되다보니 결국엔 둘 다 놓쳐 버렸지 뭡니까. 에잇, 그것들을 그냥!”


이만성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분을 터뜨렸다.

“녀석들은 기어코 내 손으로 때려잡을 것입니다. 형님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저 자신을 위해 추적을 포기하지 않을랍니다.”

이만성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더욱 분발할 듯을 밝혔다. 세사람 사이에 친형제 사이의 우애(友愛) 같은 것을 다지는 데 촉매(觸媒)작용을 했다고 느껴지자, 이만성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믓하고 기뻤다.

“이제는 비상경계망을 늦출 수야 없다손치더라도 , 강과 김 두사람의 용의자를 감시할 필요는 없어진 셈이잖아”

고정관의 말에 “그래요. 우리는 근시안적인 발상에 집착하게 된 경솔함을 뼈저리게 뉘우쳐야 되겠지요”

조용석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두고 보세요. 제가 놈들을 붙잡고 말 테니까. 놈들은 두 번 다시 원정오지 않겠지요? 왔다하면 제 손에 붙잡힐 테니까”

이만성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뼈있는 말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은 마냥 부럽고 미덥다는 눈으로, 이만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이만성이야말로 맘 속 깊은 곳에, 비밀을 숨겨놓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만성은 네 사람을 속이기 위한 악의의 속임수가 아니고, 도움을 주기 위한 선의의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문제의 괴한들을 동남마을에서 이만성은 때려잡았었다.

그리고 그치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거물급 우두머리를 붙잡아 보아란 듯이 항복을 받아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거짓말을…?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