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8-26 17:45:21

(15) ‘낮에 뜬 별’들의 행진

“선생님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얘기입니다만, 저희들은 이만성군 등과 협의 끝에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주도내 자치단체의장인 읍-면장들 중엔 벼락감투 쓴 자들이 많이 끼여있는 것 같습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 고등계형사 앞잡이 등등이 읍-면장으로 화려하게 둔갑을 한 겁니다. 그자들을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의 고견을 듣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고정관이 마침내 본론을 털어놓았다.

“음, 아주 멋진 발상이었군, 나도 동감일세. 건준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었어, 그러나 반대쪽이 우세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네. 부끄럽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는데…”

“네, 그랬었군요. 그렇다면 건준에서는 도내의 현 체제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까?”

조용석이 가시돋친 목소리로 반문을 했다.

“구면도 아닌 자네들 앞에서 이런 얘기한다는 건 쑥스런 일이지만, 그 문제를 의제로 내세운 사람은 바로 나였네, 그러나 묵살 당하고 말았지. 아까 그 젊은 사람들도 내편을 들지 않더군!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니겠어? 일본군대는 무장해제가 되었어도, 그 망령들은 눈알 까뒤집고 발광하고 있지 않나 그 말일세. 이 고장의 앞날이 너무도 암울하고 비관적이지 뭔가?”

김부위원장은 몸을 떨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네, 그랬었군요.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들이 있잖습니까? 선생님만 승낙하신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까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만반의 돌격태세를 갖춰놓고 있으니까요. 저희 관광면을 필두로 싹쓸이하기로 이미 작전계획이 세워져있다는 얘깁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문제만 남았습지요”

조용석이 주먹을 불끈 쥐고 열변을 토하듯 침방울 튀기며 힘주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각본은 다 짜여져 있습니다.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봅니다”

이만성도 짤막하게 한마디 거들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일세, 건투를 빌겠네. 다만 배후의 저항세력을 눈여겨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네”

“아 네, 배후세력-만만찮은 걸림돌이지요. 하지만, 염려놓으십시오. 저희들의 가는 길엔 어떠한 장애물도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있다해도 단호히 분쇄하고 말테니 말입니다.”

이만성이 이번은 격한 목소리로 얼굴까지 붉히며 솟구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제주도가 전국에서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식민지의 종속 식민지’로 설움 받아온 제주인들에게 때가 온 겁니다. 이제는 총궐기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구시대의 쌓이고 쌓인 썩은 찌꺼기들을 불태워 없애고, 말끔히 대청소를 해야겠지요. 환골탈태의 개혁없이 독립도 건국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중위에 군림하는 썩은 벼슬아치들을 어떻게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성스럽고 거룩한 제주땅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구심점으로 제주인들이 뜻과 힘을 합친다면 무엇인들 못 해내겠습니까? 망설일 것 없습니다. 제 아무리 저항세력이 강하게 버틴다해도 민심은 천심인데, 무너뜨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해오던 서병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아란 듯이 기염을 토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맘속으로 뜨겁게 손뼉을 쳤다.

“정말 마음 든든하군, 생애 최고의 기쁨일세, 백만대군을 얻은 기분이라니까. 고맙기 한량없네, 자네들만 믿겠네. 그런데 며칠 후 경성에서 ‘건준’관계 전국대의원 대회가 열리게 되어있어. 제주도에서는 내가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전에 모레쯤 나는 급히 상경할 일이 있거든, 여운형선생도 만나고 군정청에도 들러야 하고…제주에 대한 특별배려를 요구할 작정일세, 여의치 않을 때엔 집단적인 힘을 과시해야겠지?”

“선생님,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1주일후에 만나기로 하고, 다섯 사람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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