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사귄 내 남자친구 톱女배우가 찜했다?

새영화 -내남자의 로맨스

시민일보

| 2004-07-11 22:46:42

강북 수유리 토박이인 스물 아홉 여자 현주(김정은). 요즘 젊은이들처럼 패션감각이 빼어나다든가 열정적으로 일에 빠져 산다든가 하는 ‘바람직한’ 스타일도 아닌데다, 주변에 넘쳐나는 사람들이라고는 인간미 말고는 그다지 훌륭해 보일 데가 없는 한심한 친구들뿐이다.

미래의 꿈이라는 것도 그저 지금의 남자친구 소훈(김상경)과 결혼하는 것 정도. 하지만, 서른 언저리의 현주에게 이 ‘오래된’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는 낌새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드디어 만난 지 7주년 되는 기념일. 무슨 일이 있어도 프러포즈를 받아내리라 각오를 다지던 그녀에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라이벌이 등장한다.

상대는 모든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인 톱스타 은다영(오승현).

안 그래도 결혼에 안달이 난 마당에 거리 광고판이나 TV 브라운관 속에나 있을 줄 알았던 그녀가 남자친구 소훈에게 ‘작업’을 걸 줄이야.

답답한 노릇이다.

소훈이 일하는 방역업체의 CF에 출연하지를 않나, 자기 집의 방역을 소훈에게 부탁하질 않나, 현주의 마음은 점점 다급해지지만 진짜 문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다영의 애정공세가 거짓이 아니라는 데 있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가 갖는 매력은 ‘루저이즘’(Loserism·패배주의)에 있다.

사법고시 포기하고 만화방에 눌러앉은 기철도, 영화감독 지망생에서 비디오 가게 주인으로 ‘전업’한 봉만도, 그리고 이름만 예쁜 진실이나 허구한 날 예쁜 여자에게 남자친구 뺏기고 우는 게 일인 송이도... 현주의 주변 친구들은 모두 성공이라는 사회적인 잣대에서는 몇 걸음 물러나 있다.

친구들이 술자리를 갖는 곳도 바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집안. 이들이 마시는 술도 온더락(On the rock)이 아닌 폭탄주이며 함께 나누는 농담도 세련되기보다는 투박한 쪽에 가까운 편이다. 후반부 여주인공이 ‘결혼’ 대신 찾아나서는 ‘일’이라는 것도 목표는 될 수 없는 것. 현주의 전부는 여전히 남자친구 소훈이다.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영화의 뼈대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다면 코미디로서 영화가 주는 재미는 남자친구 지키기에 나서는 현주가 벌이는 헤프닝에 있다.

현주는 다영이 출연하는 패션쇼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란제리 모델이 되기도 하고 친구들과 집에 쳐들어갔다가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된다.

둘을 갈라놓으려고 다영의 CF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하지만 골탕을 먹는 쪽은 오히려 현주 자신이며 같이 술자리를 가져봐도 다영에게만 잘해주는 소훈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탄탄한 캐릭터와 풍성한 에피소드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이라면 단점은 이에 비해 입체적이거나 치밀하지 못한 스토리에서 발견된다.

다영이 소훈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관객들이 톱스타라고 느끼기에는 밋밋한 편이며 소훈을 놓고 벌이는 두 여자의 줄다리기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후반부 줄거리가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최근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통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정은은 이번 영화를 통해 스스로가 연기력과 특유의 캐릭터를 갖춘 영화계에 몇 안되는 여배우라는 장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가문의 영광’ 이후 ‘불어라 봄바람’이나 ‘나비’에서 ‘범타’에 그쳤던 그녀가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홈런’을 날릴 수 있을지 관심거리.

‘단적비연수’ ‘울랄라 시스터즈’의 박제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세번째 영화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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