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 청구요건, 개정해야

신 봉 기(경북대법대교수)

시민일보

| 2007-09-03 19:19:08

하남시장이 추진하던 광역폐기물소각장을 둘러싸고 시장소환운동 즉 ‘recall’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남시장의 직무정지가 개시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주민소환법 제정 당시에는 그렇게나 주민소환법안 및 우리나라에서의 주민소환제 도입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 등에 대한 주장에 귀를 막고 있더니, 막상 법 시행 이후 실제 주민소환이 진행되니 왠 호들갑이고 뒷북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지방자치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미 “지방자치에 있어서 직접민주제 방식의 도입: 특히 주민소환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논문을 한국공법학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바 있다(공법연구, 한국공법학회, 2004년 11월, 180-211면).

위 학술발표에서 주민소환 청구요건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현재의 ‘정치적 소환요건’ 방식을 우리의 지방자치 및 정치의식 수준의 발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소환청구요건을 법정하는 ‘법률적 소환요건’ 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 자리에는 정부법안의 자구 수정에까지 깊숙히 관여한 전문가의 지정토론이 있었고,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답변까지 있었지만, 동 법안은 작년 말 당시 토지규제법안과 함께 본회의에 직권상정되어 일사천리로 통과되고 말았었다.

그 결과가 지금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에는 서구의 전통적인 지방자치제의 적용원리가 그대로 대입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인위적인 지방자치단체 구역 획정부터 시작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규모, 재원확보 등도 문제거니와, 지방자치단체 주민으로서의 우리의 기본 의식 자체는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일단 이상적인 서구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고 부작용은 보다 온전한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한 수업료라고 이해하자는 생각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에 의해 우리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그 얼마인가...


지방자치제도는 주민들의 자기 지역에 대한 소속감에서 출발한다. 지역소속감이 지역의 대의기구를 구성하고, 각종 사무의 수행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의식이 그 배경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주민에게 이러한 자기 지역에 대한 자기책임 의식이 있는가? 지역에 대한 전반적 권한은 갖고자 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재원에 대하여는 얼마나 고민해 보았는가? 물론 출발점부터 서구의 지방자치제와는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한 것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발전이란 것은 制度도 思考도 논에 묘종심듯이 가져다 들여놓으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묘종이론(苗種理論)”이라 칭하고 있다.

하남시장의 잘잘못에 대해 나는 그 상세한 판단을 할 기회도 없었고 또 그 내막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보도를 통한 지식수준이 전부다. 따라서 이 글은 특정한 일방의 지지를 위한 글이 아님을 밝힌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주민단체든 하남시장 본인이든 모두 나름의 주장논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출직 지방공직자들이 제도적 결함으로 인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사업을 접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손해일 뿐이다.그 정도는 수업료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자들에게 그 수업료의 일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까지 갖는다면, 내가 너무 현실영합적 학자로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버텨내기 힘든 것일까? 어마어마한 손해와 실패가 예견되는 것임에도 理想論에 대입시켜 그것을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진정한 학자로서 취해야 할 입장인가?

전문가들도, 주민들도 모두 옮겨심으면 다 된다는 묘종이론적 이상론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워 한마디 긁적거려 본다.

※이글은http://blog.ohmynews. com/msdr89/19005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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