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m와 6m 횡단보도의 자존심
박 규 봉(인천남부서 도화지구대)
시민일보
| 2008-02-20 18:55:20
아침 7시30분, 변함 없이 같은 시간 같은 도로 같은 곳을 경유하여 출근하는 길이지만, 집근처 부평구 백운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편도1차선도로의 폭 6m 횡단보도 앞에서는 매번 긴장과 초조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그날 아침 처음 폭 1.8m 횡단보도를 처음 만났을때의 놀람과 한참동안 망설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년전 나는 아내 그리고 4살된 아들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나라에 유학을 온 학생들이 모두 그렇듯 나도 자전거 통학을 하기로 하고 중고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어느 따스한 봄날,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첫 등교길에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10km의 거리.... 하지만 설레이던 마음도 잠시, 나는 100m도 못가서 바로 문제의 1.8m횡단보도를 만나게 되었다. 승용차 한대가 지나가기에도 빠듯한 폭 1.8m의 이면도로에 횡단보도가 그어져 있고 거기에 신호등까지 번듯하게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1.8m횡단보도 신호엔 빨간불이 들어 와 있었고, 옆에는 고등학생 한명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늘 했던 것처럼 이건 신호등도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맞은 편으로 건너가려고 했다.
그러나 불현듯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인 내가 신호위반하여 지나 가다가 일본경찰에게 걸리면 ‘내가 나라망신 다 시키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그학생 옆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나는 문제의 1.8m횡단보도를 통학길에 마주쳤고, 성미급한 한국사람 중 한명으로서 수없는 유혹과 갈등을 이겨내고 신호를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배인 이후에야 어릴적부터 질서를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밴 일본인들처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신호를 지키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 탓인가?
나는 요즘 처음 1.8m횡단보도를 만나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갈등하고 있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백운초등학교 앞 보행신호를 지키려고 기계적으로 차를 멈추고 있자면, 바쁜 출근길 탓인지 뒤편 운전자들이 욕설과 요란한 크락션을 울리며 아우성이다.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 역사적 갈등과 문화차이로 인해 첨예하게 부딪히고, 때론 그들의 지나친 소심함을 비웃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6m도로의 횡단보도쯤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쓸데없는 대범함부터 내던지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1.8m도로에도 횡단보도를 긋는 진정한 자존심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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