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식량전쟁과 우리

이 태 복(前 보건복지부 장관)

시민일보

| 2008-04-13 16:44:35

요즘 농촌이 한창 바쁘다. 모내기 준비도 해야 하고, 논과 밭도 손을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사람들이 전부 노인들 뿐이다. 농촌지역의 65세 이상되는 인구가 평균 25%를 넘고 있으니 마을일을 보는 이장들이 60대로 넘어온 지 오래됐다.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국제곡물가가 치솟으면서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축산농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OECD 최저 곡물자급률국가인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데도 한국의 지도층은 농촌포기정책을 명시한 한미F.T.A를 조기비준하라고 아우성이다. 국제곡물가가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50% 폭등하고 주요 곡물수출국들이 곡물수출을 제한하면서 식량안보가 국가의 중요한 현안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한미F.T.A를 추진하자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을 반성할 법한테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미국 시카고의 상품거래소는 지난 2년 동안 국제곡물가격이 평균 2~3배 폭등했고, 밀은 275%, 콩은 215%, 옥수수는 229%, 쌀은 최근들어 107%나 뛰었다고 밝혔다. 이런 폭등현상은 1972~73년 곡물파동 때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 세계 곡물재고율이 14.6%로 떨어질 것으로 미국농무부는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각국의 곡물수출이 더 통제되고 빈곤국가들의 경우 식량폭동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사료용 곡물파동으로 돼지 파동을 겪은 이후 84개 곡물을 수출제한조치했고, 아르헨티나와 인도도 가세했다. 물론 여기에는 다국적 식량기업과 투기자본의 농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이 국제곡물파동이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과 인도와 같은 인구대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곡물소비가 늘고, 신흥공업국가들의 증가도 계속되고 있어서 식량 소비증가세가 여전하다. 여기에다 기후변화로 가뭄과 홍수가 잦아지고 사막화, 산업화로 경작농지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기가 막힌 일이 너무 많다. 미국쌀을 수입하기 위해 쌀농사를 줄일 방책으로 휴경농민들에게 직접 보상비를 지급하는데 매년 수백억을 쓰고 또 그 노는 땅을 그냥 방치해두고 있다. 엄청난 국민세금을 투입해 경지정리작업을 한 지 몇 년도 안 돼 직선도로를 낸다고 논을 파헤치고 천수답과 산비탈 경작지를 몇 년째 묵히면서 아파트단지와 텅텅 빈 농공단지를 왜 만드는가.

이런 한심한 농촌현실은 식량자급률 OECD 최저국가라는 비상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선진국가들은 농업을 포기한 나라로 알고 있는 한국지도층이 많은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프랑스는 329%, 독일은 147.8%, 미국은 125%로 과잉자급률을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위기에 한국까지 국제곡물파동을 맞게 된다면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므로 장단기 전략을 세워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농촌인구의 감소속도로 볼 때 농경지에 대한 종합적 접근이 효과적으로 추진된다면 5% 내외인 옥수수, 콩, 밀의 자급률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국가차원에서 식량 자급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장단기 정책수립과 집행이 분명해진다. 둘째, 시장조건과 국민들의 식생활변화, 인삼, 생약재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한 국토이용계획이 현실성 있게 수립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셋째 곡물, 야채, 원예, 생물 등 농업생명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데이터 확보, 우량품종의 보급작업이 절실하다. 딸기, 고추까지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지급하게 된 현실은 농정실패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넷째, 상호보완적인 국제간 협력 작업이 구체화돼야 한다.

국제곡물파동의 교훈을 통해 한국농촌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시대의 중요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후손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촌현실을 어느 정도 변화시킨 뒤에 해도 늦지 않은 만큼, 한미 F.T.A를 서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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