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을 먼저 쳐라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9-04-12 12:06:35
이른바 ‘박연차게이트’와 관련, 필자는 지난 8일 “이미 죽어버린 과거 권력보다 살아 있는 현재 권력의 주변에 대한 조사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권력의 부패는 진행형으로 앞으로도 더욱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은 지금까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참여정부 시절 재임했던 고위 공직자, 전.현직 민주당 의원 등 과거 정권과 관련 있는 인사에 대한 수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반면, 2억원의 청탁금을 받은 추부길 전 비서관을 구속한 이후 연루설이 제기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등 현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은 무혐의 처리를 내리거나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아주 소극적인 수사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박연차게이트’가 마치 이미 죽은 정권에 대한 타깃 수사처럼 보인다고 지적했었다.
필자가 이처럼 ‘죽어버린 권력’보다 ‘살아있는 권력’에 관심을 갖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현 정권이 이를 기회로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정부를 겨냥, 사정의 칼날을 빼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비록 청와대와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라고 하지만 무려 40%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보수층은 대체로 이 같은 강경 일변도의 국정운영에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국정운영 지지율이 40%를 돌파한 배경에는 보수 세력의 ‘집토끼 잡기’가 상당부분 효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는 도수가 높은 마약 투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편을 맞으면 일시적으로 통증이 완화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즉 40%의 우파 총 결집을 위해 나머지 30%의 진보세력은 물론 역시 30%대의 중도성향까지 모두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는 4.29 재.보궐선거에서 이른바 ‘노무현 악재’로 민주당이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 한나라당이 전패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인사들이 “살아있는 권력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대논객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는 12일 “이미 권좌에서 내려온 사람을 성토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이 시점에서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물론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지난 10일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죽은 권력에만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고, 살아있는 권력에는 무력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일격을 가했다.
물론 이들 보수인사들의 발언은 지극히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굳이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지목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을 보고 “아! 욕 나온다”고 말한 어느 네티즌의 생각과 같을 지도 모른다.
특히 현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이 깊게 작용했을 것이다.
즉 죽은 권력의 도덕성보다 살아있는 권력의 도덕성이 나을 것 없는 데, 이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몰고 갔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배경에 깔려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정말 그런 자신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는 이상득 의원 등 ‘박연차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자신의 주변 인사들에 대해 먼저 사정의 칼날을 겨누어야 한다.
추부길 씨처럼 이미 버린 인사들이 아니라, 현재 청와대 주변에 남아 있거나 한나라당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핵심 친이(親李,친 이명박) 인사들에 대해 과감하게 메스를 대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해도 국민들이 지금처럼 코웃음 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나저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모르쇠’하고, ‘죽은 권력’에 대해서만 돌팔매질을 하는 검찰을 신뢰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BBK에 대해 면죄부를 줄 때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검찰이다.
따라서 검찰이 진정 거듭나려면, 살아있는 권력부터 먼저 치는 용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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