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신당 깃발’ 치켜들까?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5-26 11:41:06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 소식에 ‘검찰 책임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전국에서 모여든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여권 인사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조문을 거부당하는 것은 물론 멱살잡이를 당한 채 쫓겨나는 등의 수모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24일 오후 국회 관계기관장들을 대동하고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지만 조문을 거부당하는 것은 물론 물세례까지 받았다.
가까스로 마을입구까지 빠져나갔지만 성난 지지자들로 인해 경비숙소로 몸을 피하는 일까지 있었다.
심지어 친박연대를 이끌게 된 이규택 최고위원도 이날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지만 멱살잡이를 당한 채 끌려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입술이 약간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최고위원은 "친박연대도 정치검찰의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조문을 왔지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을 못했다"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비행기를 타고 김해에 도착해 봉하마을로 향하던 도중 장례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보다 못해 장례위원회 측에서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시민 전 장관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내보내 설득했으나, 지금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친박연대 이규택 최고위원과 박근혜 전 대표 등은 그런 책임에서 아주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건 정치를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즉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여전히 ‘한 통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이 대통령의 실정을 준엄하게 질책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무수히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권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MB 악법에 대해 청와대의 속도전 요구를 지상명령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지 않는가.
비주류인 박 전 대표가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 보지만 역부족이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주류 측에서 그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은 완전히 청와대의 눈치나 보는 꼴불견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4.29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즉 당청이 지나치게 밀착돼, 당이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 표심으로 나타났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오히려 ‘당청소통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헌당규를 개악하려 들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다.
실제 친이 계파 의원들은 “현재의 혁신안은 야당 때 만든 안이라 거대 여당이 된 지금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대통령 친정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거나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단일지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뱉고 있다.
가뜩이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이대로 가면 오는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물며 당헌당규 개악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간판으로 등장한다면, 그 당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한나라당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밀어붙일 힘도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더 멀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당헌당규를 개악한다?
어쩌면 그것이 박 전 대표로 하여금 ‘신당’의 깃발을 치켜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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