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한나라당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6-01 12:56:46

한나라당은 1일 원내부대표를 수석부대표를 포함해 9명으로 제한하는 당헌을 개정, 13명으로 증원하기로 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9인 이내의 부대표를 둔다는 당헌 제77조를 개정해서 13인 이내의 원내부대표를 둔다고 개정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상임위 중심의 국회 운영을 위해서는 겸임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정보위·여성위를 제외한 13개 상임위 수만큼 원내 부대표 수를 늘려 상임위 연락 및 지원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말로는 ‘상임위 중심의 국회운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내 부대표를 통해 당이 국회 상임위를 통제하고 간섭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이는 현재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당헌당규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개정될 것인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지표라는 점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상임위 중심의 국회운영이라 함은 그야말로 당의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사안을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원내부대표로 하여금 상임위에 연락하고 지원활동을 펼친다는 명분으로 일일이 통제하고 간섭하겠다니 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소속 의원들 개개인의 의사보다 당론을 더욱 중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즉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당론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라는 압력인 셈이다.

여기서 문제는 한나라당의 당론이 곧바로 청와대의 요구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실제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 청와대의 ‘속도전’ 요구를 지상명령처럼 받들어 미디어관련법 등 각종 ‘MB 악법’을 밀어붙이는 거수기 노릇만 해오지 않았는가.

결과적으로 원내부대표를 증원해 상임위를 관장토록 하는 것은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거수기’ 노릇을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하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한마디로 개혁이 아니라 개악인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정된 ‘당청소통강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불 보듯 빤하다.

국민들의 요구는 당정분리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오히려 당과 청와대의 ‘소통을 강화 한다’는 명분으로 당청이 한 몸이 되려하고 있다.

더구나 강력한 단일지도체제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마당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을 당의 총재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강경 친이 세력에 의해 점령당했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해 안상수 원내대표까지 모두가 강경 친이 일색이다.

여기에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위력을 발휘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장광근 사무총장도 강경 친이 세력이다.

따라서 이들이 이 대통령을 ‘제왕적 총재’로 추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 소식이 없었다면, 지금쯤 한나라당은 노골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보였을 지도 모른다.

결국 친이 세력에 의해 점령당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청소통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MB가 직접 당무에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미우나 고우나 MB와 공동 운명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즉 MB가 성공하면 한나라당이 살아남겠지만, MB가 실패하면 한나라당도 궤멸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MB 정권이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MB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MB에게 탈당을 종용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출당시켜서라도 당정분리 원칙을 철저히 준수토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럼에도 끝내 지도부가 MB를 끌어안고 동반자살을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뜻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당을 깨고 나와 바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닐까?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뛰어 내리는 것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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