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특위, 돌아가지 마라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6-02 13:10:49

한나라당은 지금 ‘쇄신’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6대0으로 완패한 정당이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민심까지 완전히 돌아선 마당이다. 따라서 당내에서 쇄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실제 민심은 점차 한나라당을 떠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미 지지율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에게 역전 당했다고 한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지난달 30일 전화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도는 27.3%로 급상승한 반면 한나라당은 20.8%로 내려앉으며 양당 지지율이 4년여 만에 역전됐다.

같은 날 한겨레신문이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서도 민주당은 27.1%로 한나라당(18.7%)을 무려 8.4%p나 앞질렀다.

물론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반 MB’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같은 현상이 오래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여당이 쇄신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나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 내에서 쇄신책이라며 내놓는 처방전들을 보니, 그 방향을 제대로 잡기는 아예 글러먹은 것 같다.

우선 민본 21 등 일부 소장파와 당 쇄신특별위원회가 쇄신책으로 '박희태 지도부' 교체를 들고 나왔다.

지난달 29일에는 원희룡 쇄신특위원장과 남경필·권영세·정두언 의원 등이 박 대표를 만나 "민심을 수습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열기 위해 사퇴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인적 쇄신론'이 박 대표를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그런 분위기가 당내에 팽배해 있다.

당 지도부의 일원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이에 가세했다.

공 최고위원은 2일 당쇄신 문제와 관련 "지금 임기응변적인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쇄신을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그럴 때는 지도부 총사퇴도 거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대표 측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권의 위기가 박 대표만의 책임인 것처럼 끌고 가려는 것"이라며 "박 대표를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강력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면 쇄신 특위에 묻겠다.

정말, 박희태 대표의 무능 때문에 한나라당 지지율이 땅바닥으로 추락했다고 믿는가?


그의 무능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반 MB’ 정서가 단단하게 형성됐다고 믿는가?

여기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다면, 박 대표가 사퇴하는 게 맞다.

그러나 ‘아니다’라고 답변한다면, 그건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어떤가?

솔직하게 말하자. 한나라당 지지율이 민주당에게 추월당한 것은 박희태 대표 탓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탓 아닌가?

그렇다면 박 대표에게 그 책임을 묻기에 앞서 당연히 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게 순서다.

물론 당이 대통령직 수행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당원 이명박’ 개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당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당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그를 출당조치 시키면 그만이다. 그래도 그가 ‘살아 있는 권력’이라 조금 눈치가 보이고, 그의 정치적 보복이 두렵다면 탈당을 종용하는 방법도 있다.

누가 뭐래도 현재 사태를 초래한 책임은 이 대통령이고, 따라서 한나라당 쇄신 방향은 ‘MB와의 결별’ 쪽으로 진행되는 게 맞다.

당헌당규도 ‘당정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정작 책임져야할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 말도 못하면서, 만만한 박희태 대표의 사퇴나 거론하는 쇄신특위와 소장파들을 보면 너무나 가증스럽다.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이 역겨워 토악질이 날 정도다.

특히 무능한 박 대표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대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이 대통령을 당의 총재나 대표로 세울 생각이라면 아서라.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들이 그대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며, 전 국민이 한나라당 쇄신방향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러니 쇄신 특위는 돌아가지 마라. 당원과 대의원, 그리고 국민을 믿고 정면으로 돌파하라.

다시 말하지 않아도 ‘쇄신’의 칼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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