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쇄신은 꽃단장이 아니다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6-07 12:02:20
한나라당 내에 ‘쇄신’의 구호가 요란하다.
당 지도부는 물론, ‘민본21’ 등 소장파와 자칭 ‘원조 소장파’라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쇄신특위, 공성진-정두언 의원과 같은 친이 핵심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쇄신’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쇄신’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씁쓸하기 그지없다.
실제 지금 당내에서 흘러나오는 ‘쇄신’의 목소리는 조기전당대회 개최와 지도부 개편 쪽으로 집약되고 있다.
4.29 재.보궐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잇따라 참패하고 지지율마저 민주당에 역전당하자 “더 이상 ‘관리형 대표’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특히 원희룡 쇄신특위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현상유지를 위해 책임지는 모습을 거부할 경우 쇄신특위 활동을 즉시 종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심지어 소장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이에 응할 리 만무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쇄신’이 아니라, 단지 보기 좋은 ‘꽃단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설사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직을 맡았다고 해도 추락한 한나라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마땅히 당헌.당규에 따라 ‘불도저’로 통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왕적 국정운영 방식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3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법부는 이미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퇴임식에서 “이쪽저쪽서 많이 흔들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감히 검찰 총장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실제 친박연대는 지난 2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3당 관계자들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친박연대를 제외한 타 3당도 모두 선거자금으로 차입금, 차용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수사의 손길이 친박연대에만 뻗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법원 재판부가 갑자기 바뀌며 신영철 대법관이 부심으로 배정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신 대법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하는 재판개입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면 입법부는 어떤가.
이건 사법부보다 더 심하다.
실제 국회의 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마치 대통령의 ‘딸랑이’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디어 관련법 등 이른바 ‘MB 악법’에 대해 속전속결 처리하라는 청와대의 요구를 지상명령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게 한나라당이다. 국민 여론이야 어떻든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행정부의 거수기 노릇조차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당 대표를 바꾸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쇄신’이 아니다. 진짜 ‘쇄신’은 현재의 혁신적인 당헌당규를 제대로 준수하고, 당.정.청을 분리해 당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의 잘못된 제왕적 국정운영 행태에 제동을 걸고, 여당으로서 따끔하게 질책했다면 재.보궐선거의 잇따른 참패는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실상은 어떠한가.
이른바 ‘쇄신책’이라며 ‘당청소통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나아가 ‘대통령직할체제’니 ‘강력한 단일지도체제’하면서 박 전 대표가 민주적으로 바꾼 당헌당규를 개악하려 들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한나라당의 ‘쇄신’은 당헌당규에 따라 당정분리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데 있다. 즉 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완전하게 분리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당이 잘못된 불도저식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진정 ‘쇄신’을 바란다면, 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게 맞다. 탈당요구에 불응할 경우, 출당조치를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 ‘쇄신’의 근원적인 해결책이다. 이 방법을 ‘쏙’ 빼버리고, 그저 당 대표나 바꾸는 ‘꽃단장’ 같은 부차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쇄신’을 이룰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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