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성 지도체제’ 논의 수상하다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6-10 17:05:04

6.10 범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저녁 정치부 기자가 서울광장에서 철야농성 중인 민주당 핵심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 중인 개헌논의와 관련,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모든 언론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조.중.동이 더 설치는 데, 아마도 개헌 여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 같다.”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회에서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하되 부통령을 두는 방안이고, 또 하나는 대통령에게는 외교권과 비상대권만 부여하고, 내치는 총리가 맡는 대통령제와 내각제 혼합형 방안이다.”
그래서 기자가 “두 가지 방안 중, 어느 것이 유력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답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다고는 하나 그는 살아 있는 권력이다. 살아있는 권력이 반대하면 어렵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자기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4년 중임제를 할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내각제 형태의 개헌으로 갈 것이다.”

기자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개헌은 이명박 대통령 의도대로 진행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냥 얼굴마담 대통령이라도 하는 게 낫다.”

사실 필자가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헌논의와 관련, 사실상의 내각제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미 필자는 수차에 걸쳐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의 내각제’ 개헌을 통해 잡기집권하려는 음모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물론 민주당도 이런 식의 개헌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직접 민주당 관계자로부터 확인하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정말 이러다 내각제 형태로의 개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잘 알다시피 내각제는 원내 다수당의 대표가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되는 제도다.

즉 민주당이 원내 다수당만 된다면 실권을 가진 총리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제도다. 지금 지지율을 봐도 한나라당 보다 조금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참 이상하다.

민주당은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없기 때문에 내각제 형태로의 개헌에 대해 찬성한다고 해도, 왜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한나라당 소속의 ‘박근혜’라는 유력 대권주자가 있는데도 그런 식으로 개헌을 하려는 것일까?

결론은 하나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동반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차라리 민주당에게 권력을 넘겨줄지언정, 박 전 대표에게는 권력을 넘기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나라당내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쇄신논의도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쇄신의 방향은 당연히 국정쇄신 쪽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당 지도부 용퇴니, 조기전당대회니 하는 말단 지엽적인 문제로 흘러가고 있다.

급기야 쇄신위에서는 ‘단일성 지도체제’라는 말까지 튀어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단일성 지도체제’로 가기위해 당헌당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각종 언론은 이를 박근혜 전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홍준표 전 원내대표가 원내대표를 물러나기 직전 ‘강력한 단일지도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대통령 친정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즉 당헌당규를 바꾸고 나면, 이 대통령이 당 대표직을 겸직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에게는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는 대통령 후보직을 주겠다며 당내 반발여론을 무마하려 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하는 형태의 개헌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도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찬성하는 분위기다.

내각제로 개헌되면, 원내 다수당 대표가 실세 총리가 된다. 그래서 MB가 ‘쇄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단일성 지도체제’로 당헌당규를 바꿔 당대표가 되려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MB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당 대표로서 실세 총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기집권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말 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꿈 깨라.

박 전 대표가 ‘허수아비 대통령’ 제의를 받아들일 리도 없지만, 설사 그가 받는다고 해도 국민이 지긋지긋한 MB 정권의 재집권을 용납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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