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박근혜 저격수'가 된 까닭은
김유진
| 2009-06-14 12:52:30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준표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저격수’로 나선 모양새다.
홍 의원은 지난 13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이미 2년 전에 승부가 나 대립구도가 없어졌는데도 박 전 대표는 패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경선 국면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박 전 대표를 향해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또 그는 “이미 승부가 난 상황에서 패자의 길로 가지 않고 승자에 대해 진정성을 요구하는 그런 처신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쳐야 할 점”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그는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거부한 것도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친박은 더 이상 몽니를 부리면 안 된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이날 발언을 지켜보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얘기지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만큼 홍 의원의 발언은 그 정도가 심했다. 마치 독(毒)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철저하게 패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현장 투표에서 승리하고도, 엄연히 오차범위가 존재하는 여론조사에서 그 오차범위 내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패자가 되는 이해할 수 없는 경선 결과에 대해 깨끗하게 승복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대해 가급적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보다보다 못해 가끔 한마디씩 조언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 이상을 넘기는 일이 없다. 자신이 패자인 까닭이다.
그런데 침묵하는 그를 국민들이 승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은 묵묵히 패자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국민들이 그를 승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몽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박 전 대표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그를 승자로 만들어 준 국민을 비난하는 것이 된다.
특히 당헌당규에 따라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을 박 전 대표가 거부한 것을 홍의원이 비난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현재의 가장 민주적인 당헌당규를 만든 사람은 바로 홍 의원 자신이다. 따라서 홍 의원은 민주적인 당헌 당규를 철저하게 지키려는 박 전 대표에게 “멋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왜, 홍 의원은 박 전 대표를 향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독화살을 날리는 것일까?
둘 중 하나다.
정치부 기자들 정보 보고에 따르면, 그는 장광근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서울시당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청와대와 친이계를 향한 구애의 손짓을 보낸 필요성을 느꼈고, 그 방편으로 ‘박근혜 저격수’ 노릇을 자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보통으로 통하는 그에게 이렇게 막말수준의 발언해도 좋을만한 어떤 소식이 전달됐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그가 얻은 정보는 어떤 정보일까?
혹시 분당?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은 그 주체가 친이 쪽인지, 아니면 친박 쪽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양쪽 모두 그럴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친이 측에서는 당내 화합이 이뤄지지 않아 4.29 재보선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반면 친박 측은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 잘못 탓으로 여기고 있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친이 측은 친박과의 화합이 어렵다면, 화합이 되는 사람들끼리라도 잘 뭉치자는 생각에서 대통령 직할체제로 당헌당규를 바꾸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친박 측은 오히려 당권과 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이 대통령과의 단절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결국 이런 해법의 차이가 당을 둘로 쪼갤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보통 홍 의원은 이런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기꺼이 ‘박근혜 저격수’ 노릇을 자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홍 의원은 상대를 잘 못 고른 것 같다.
특히 지금의 당헌 당규를 만든 사람이 홍의원이라는 점에서 그 화살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결국 저격수가 되어 날린 독화살에 홍 의원 자신이 타깃이 되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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