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짧은 안목 vs. 긴 안목

고하승

| 2009-11-19 12:42:40

편집국장 고하승

정치인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까?

단순히 금배지를 달았느냐, 못 달았느냐 하는 것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가 더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자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지난 10.28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필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금배지보다 국민의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두 사람 모두 거대한 정당의 대표를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 10.28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두 사람의 행보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손학규 전 대표에게 수원장안 지역구에 출마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 때 못이기는 척 그런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십중팔구 무난하게 당선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의 요청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물론 그도 정치인인 까닭에 당장 금배지를 달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희태 전 대표는 어떤가?

경남 양산에서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자, 그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양수 전 의원이 공천을 신청했음에도 불구, 당 대표로서 공천을 신청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는 그 지역 인사가 그 지역에 출마하는 게 옳다며 공천을 극구 사양한 손학규 전 대표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결국 손 전 대표는 금배지를 달지 못했고, 박 전 대표는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 가운데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손 전 대표가 야권 주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약진을 하고 있다. 길게 본 안목이 그를 성장시킨 셈이다. 반면 박 전 대표는 구사일생으로 금배지를 달기는 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했다.

과연 어느 것이 짧은 정치이고, 긴 정치인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세종시 문제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 가장 득을 본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당시 "행정수도 이전을 못하게 하려면 군대라도 동원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발언으로 수도권 이전에 불안감을 느끼던 수도권 표심을 단숨에 장악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그가 박 전 대표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도권에서 ‘이명박 대세론’이 형성된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 그는 충청 표심을 의식, 전혀 다른 발언들을 쏟아 냈다.

실제 2007년 9월 한나라당 후보 당시 그는 세종시 원안에 대해 “훌륭한 계획이다. 서울시장 시절엔 반대했지만 기왕 시작된 거 제대로 해야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같은 해 11월에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며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었다.

그렇게 해서 충청 표심을 바탕으로 그는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는 또 돌변했다.

지난 달 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세종시 추진을 백지화 하려는 뜻을 강력 시사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3월 2일 의원총회에서 “확정된 당론을 번복할 경우 앞으로 국민이 어떻게 한나라당 당론을 빋겠느냐”며 ‘약속’의 소중함을 강조했었다.

이게 경선에서 불리하게 작용, 수도권으로 불어오는 박풍을 차단하고 결국 그는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이런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달 23일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필요하다면 ‘원안+알파’가 돼야 한다”는 말로 수정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과는 어떤가.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실상 바닥까지 추락해 이미 ‘지는 해’가 된 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부동의 1위’자리를 지키며 ‘뜨는 해’가 되고 있다.

권력을 붙잡기 위해 이해관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게 순간적으로는 이득을 안겨 줄지 모르지만, 미련하게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게 국민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짧은 정치생명을 마감하려면 금배지나 권력을 쫓아도 무방하지만, 긴 정치생명을 영위하려면 그보다 국민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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