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만일 박근혜가 없다면...”

고하승

| 2009-12-17 13:56:22

편집국장 고하승

“만일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없다면...”

이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 인사들 가운데 서울지역 구청장 공천을 희망하는 지역 정치인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민주당 인사들이 이처럼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갖는 데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내년 지방선거가 민주당으로서는 약진할 수 있는 최대의 호기(好期)다.

우선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보다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가 무려 10% 이상 높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고작 30%~40%대를 오르내리는 정도로 형편없다. 즉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최소한 대여섯명 정도는 이 대통령을 싫어하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이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세종시 문제 역시 이 대통령이 방송을 독점하고 대대적인 홍보작업을 펼쳤음에도 국민 반대여론이 찬성보다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싫다보니 그가 하려는 일마다 모두 못마땅해 보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제1 야당이 반사이득을 얻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민주당에게 그리 녹녹치 않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민주당보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10%정도 높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은 그 원인을 ‘박근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이 대통령의 잇따른 실정에도 불구 민주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추월하지 못하는 이유는 박 전 대표가 여당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만일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없다면...”이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할 적임자로 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과 같은 야당을 지목하지 않고 있다. 비록 여당에 몸을 담고 있지만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독선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종시 문제를 놓고 보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결사반대’, ‘당력집중’, ‘무한투쟁’ 등의 무시무시한 구호를 내걸어도 그저 “제가 할 말은 이미 다 했다”는 박 전 대표의 온순한(?) 발언의 절반정도도 파괴력이 없지 않는가.

사실 국민들은 ‘이명박 거수기’로 전락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싫지만, 언젠가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모습을 제대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여당지지를 철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으면 좋겠다”는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이명박 독선 견제자 박근혜’라는 국민의 기대가 무산되고, 결국 국민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접고 민주당 쪽으로 넘어 올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의 이 같은 소망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우선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차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실제 세종시 문제를 건드린 것도 사실은 ‘원안+알파’ 입장을 밝힌 박 전 대표를 침몰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전 대표 역시 ‘후보 보장’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잘못된 국정 운영을 눈감아 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평생 지켜온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여당 소속이면서도 ‘이명박 독선 견제자’라는 역할을 철저히 이행할 것이고, 국민들은 그런 박 전 대표를 믿고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철회를 당분간 유보하게 될 것 같다.

문제는 그 ‘당분간’이라는 시간이 언제까지냐 하는 점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라면 민주당이 서울 전역에서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게 될 것이고, 그 이후라면 한나라당이 구사일생(九死一生)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분이 불과 취임 2년만에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은 사실도 한심하거니와 자신들의 지지율이 오르지 못하는 원인을 ‘박근혜 탓’으로 돌리는 민주당의 모습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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