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갈등의 불가피성과 현실적 해법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유진

| 2009-12-23 17:01:47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남남갈등은 우리가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홍역이다.

냉전시대 적대적 대북관계가 지배적일 때에 우리는 남남갈등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시작되면서 과거에 익숙한 대북의식과 새로운 대북의식 사이에 치열한 쟁점과 논쟁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바로 ‘남남갈등’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결국 남남갈등은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서 냉전을 지나 탈냉전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남북 적대관계에서 남북 화해관계로 가는 도정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성장통인 것이다. 성장하면서 불가불 겪는 홍역인 셈이다.

또한 남남갈등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자화상의 결과이다.

북한을 어떻게 보고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좌우, 보수 진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여당과 야당이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그 차이가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비화되고 상대방의 주장을 도저히 이해하지 않으려는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극단적 투쟁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조건 탓이 아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이를 상호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생각을 무조건 잘못으로 간주하고 강제로 교정하려는 배타적 독선이 우리 모두에 만연해 있는 탓이다.

또한 자신들에게 정치적 도움이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정치적 활용과 정략적 반대를 서슴지 않는 집권세력과 야당도 당리당략으로 대북정책을 접근하는 과잉정치화의 우리 정치 모습이다.

결국 부정적 사회현상으로서 남남갈등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일 뿐이다.

구조의 탓이면서 우리의 탓인 남남갈등은 그래서 탈냉전과 냉전유제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정세와 항상 정치적으로 대북정책을 접근하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와 획일주의와 전체주의에 익숙한 반관용의 우리 토론문화가 핵심 근본원인으로 자리잡은 채 고착화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따라서 남남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비가역적인 탈냉전적 질서로 정세구조의 물질적 토대가 변화하고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대북정책을 활용하지 않는 정치권의 근본 변화가 이뤄지고 아울러 우리 사회 전반에 관용의 문화가 탄탄하게 뿌리내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같은 근본 원인에 대한 근본적 해법 제시는 일반론에 머물 뿐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남남갈등의 근본 원인을 완전 해소하기 위한 근본 해법은 지금 당장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남갈등의 폭과 깊이를 왜곡된 방식으로 심화시키고 극단화시키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다.


냉전과 탈냉전의 공존, 남북 대치와 남북 협력의 공존이라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당연히 대북관과 대북정책의 차이는 필연적인 일이고 오히려 북한이라는 이중적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에서 일정한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건강하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생산적인 의견차이가 과도하게 필요이상으로 확대되면서 소모적이고 치유불가능한 적대적 대결로 치닫게 되는 데 있다.

여기에는 합리적 진보와 보수가 아닌 극단적 친북과 반북의 소수 주장이 마치 진보와 보수의 전체 의견인양 과잉대표되는 것과 정권에 대한 감정적 호오도가 맹목적으로 대북정책 찬반으로 투영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행태 등이 작용한다.

남남갈등의 근본적 해소를 지금 당장 구하는 것이 사실 연목구어의 성급함이라면 지금은 존재하는 갈등을 과도하게 확대심화시키는 잘못된 현상에 대한 교정과 극복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극단적 친북과 반북의 화해불가능한 주장을 톤다운시키고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합의가능한 최소공약수를 찾아내는 일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보고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차이 그 자체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언젠가 객관적 정세구조의 비가역적 정착으로 인해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차이를 좁히고 합의의 지점을 넓혀가지 못하고 오히려 차이를 과도하게 넓히고 합의를 도저히 불가능하게 몰아가는 우리 내부의 정서와 행태에 있다.

합리적 보수와 진보의 생산적인 토론이 대북정책에 관한 최소한의 공감대를 어렵지만 만들어 낸다면 남남갈등이 남남합의로 전변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지식인 내부의 이른바 ‘정론’ 그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 정론그룹이 중심에 서서 양 극단의 과잉대표성을 막아내고 합리적 입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한다면 시민사회의 소모적인 남남갈등은 상당부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북을 무조건 편드는 근거 없는 친북주의와 대북포용정책을 무조건 비난하는 맹목적인 반북주의 사이에서 정론그룹이 합리적 공론화를 이끌어 간다면 진보와 보수의 생산적 토론은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당장 가능한 남남갈등의 해법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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