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루설의 자승자박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유진
| 2010-04-13 13:12:48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천안함 사태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못내 착잡하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순국한 고귀한 희생 앞에 안타까워 하다가도 사고 이후 군의 대응 과정을 보면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늑장 대응으로 구조 작업이 늦어진 것은 군 당국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거니와 사고 원인에 대해 오락가락 입장을 보이는 것은 혹여나 진실을 은폐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유독 내부 폭발 등 자체 사고 가능성은 서둘러 배제해버린 군의 잠정 결론은 아무래 봐도 균형적이지 못하다. 당시 교신 내용을 밝히지 않는 점과 TOD 전체 영상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 점 그리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제하는 점 등은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혹여라도 눈 앞의 불이익을 피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거라면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격이 될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진실을 가린다 해도 끝까지 가릴 수는 없을 것이며 사실을 숨긴다 해도 언젠가는 진실이 만천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진실이 가장 큰 힘이며 정직이 최선의 정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고 원인을 놓고 다양한 백가쟁명의 주장이 제기되지만 그 중에서도 북한과의 연관 가능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는 놀라움을 넘어 불안감을 느낀다. 내부 원인을 일단 배제하고 외부로부터 원인을 찾다 보니 인간 어뢰, 6.25 기뢰, 잠수정 어뢰 등 북한연루설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 잠수정이 노후해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도, 장착된 어뢰가 그 정도의 명중도와 파괴력을 갖기 힘들다고 해도 북한연루설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하다보니 이제 북한의 잠수정은 우리보다 우월한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어뢰 역시 직접 부딪치지 않고도 함정을 파괴하는 가공할 수준에 도달해 있다. 북한연루설은 급기야 북한을 뭐든지 할 수 있는 무한 능력의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북한 소행이 확인될 경우는 당연히 엄정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지만 지금 단계에서 분명한 사실 확인이나 뚜렷한 증거도 없이 지레 짐작으로 북한연루설을 흘리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울 뿐 아니라 이롭지도 못하다.
또한 북한연루설은 결과적으로 보수 정권에 손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의 하나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되면 이는 자체 사고나 내부 폭발시의 책임보다 훨씬 큰 정치적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보수 정권의 특허처럼 되어 있는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이기 때문이다. 백령도 남쪽 바다에까지 북이 와서 도발하는 데도 함장과 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라면 이는 보수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된다. 북한연루설로 당장의 곤혹스러움을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돌아온 화살이 되어 현 정부를 안보 무능 정권으로 낙인찍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연루설은 북한 소행으로 밝혀진 이후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놓고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북이 도발한 것이라면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응징하고 대응해야 한다.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명백한 군사 도발이므로 이명박 정부는 군사적 수단을 포함해서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응징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북한 해군에 보복 타격을 가하거나 군사적 맞대응을 한다면 전면전으로의 확대를 각오하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해서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고 대북 제재를 추진한다면 그것만으로 뿔난 국민 감정이 진정될 지 또한 미지수다. 북한이 한 짓이라면 전쟁 불사의 전면 보복을 해야 할 지, 사과 요구와 재발 방지 수준의 뻔한 대응을 해야 할 지, 오히려 정부는 가장 어려운 정치적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 국민들은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와 군 당국의 우왕좌왕과 원인 규명 미흡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아무 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시적인 책임 회피와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북한연루설을 강조하는 거라면 후일 감당할 수 없는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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