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세 점부터 시작이다
박정수 (작가.미술칼럼니스트)
김유진
| 2010-04-21 02:40:42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세 점부터 시작이다
조용한 미술 애호가 한 분이 있다. 1995년 백화점 미술관에서 일할 때 만난 분이다. 기획 전시였는데, 전국의 사라져가는 기차 간이역의 풍경과 역사를 담아내는 작품들을 전시하는 행사 때 만난 분이었다. 평범한 중년 신사였던 그가 전시 작품 중 하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고향역이라고 하면서 백화점 카드를 꺼내더니 3개월 무이자로 70만원에 작품을 구입했다.
미술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오신 분이 70만원이란 고가품을 충동구매 하였노라 하면서 전시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서가 자신을 끌어들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고 했다. 근처를 지날 때면 백화점에 들를 일이 없어도 백화점 화랑에는 들러 차 한잔 마시고 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한 달에 한 번쯤 전시장을 찾아왔었는데, 6개월쯤 지난 후에 간이역을 그렸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게 되었다. 우연히 작품을 보다가 작가 이름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작가 이름과 같은 것을 알아보고는 더욱 가깝게 느껴져 좀 더 집중적으로 작품을 관람했다. 지난번 작품을 구매한 분이라고 하면서 작가에게 소개시켜 드렸다.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는 가끔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고향역만 사지 않았으면 본인은 이미 아파트 한 채는 더 샀을 거라는 농을 하기도 했던 때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림에 문외한이다 보니 귀한 작가님께 실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술을 제가 잘 모르거든요. 요즘은 못 가지만 완행열차를 타고 통학할 때의 기분이 작품에 들어 있어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거실에 걸어 놓고 밥 먹다가도 집사람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해요. 비싼 돈 주고 그림 샀다고 야단 안 맞으려면 자꾸 이야기해야 하거든요. 걸어놓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왜 샀냐는 타박이 바로 떨어지거든요. 하하하.”
그렇게 작가와 만나서 인사하고, 잘 모른다는 미술 이야기 나누고, 작가의 정신세계 같은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한 점을 더 구매하게 되었다. 약간 강매적 성격도 있었지만 작가와 만났다는 부담감이었는지 지난번과 같은 가격에 구매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작품 가격의 할인은 그때도 있었다. 100만원 작품을 판매하면서 할인해준다는 말로 현혹시켰다. 화가와 구매자의 만남이 아니었다. 고향의 감성을 제공해준 사람과 고향의 향수를 향유하는 사람의 만남으로 보는 것이 합당했다. 본인의 감성과 화가를 알게 되었다는 즐거움이 반강제적으로 작용해 한 작가의 작품을 두 점이나 소장하게 된 그분은 천천히 미술 감상의 재미에 젖어들게 된다.
“더 이상 저한테 미술품 사라고 하지 마세요.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 생활 여건상 돈백 가까운 미술품을 산다는 것은 사치입니다. 그림 사라고 하면 더 이상 못 옵니다.”
이후로 가끔씩 만났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소주잔 기울이며 미술계 이야기며, 작가 이야기며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간혹 화가가 동석하는 기회도 있어 미술이라는 것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까이 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있었다는 것을 그분 스스로가 체득해 나갔다. 좋은 전시가 있으면 초대장을 보냈다.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서 대형 전시가 있으면 같이 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서먹한 허물이 벗어졌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좋은 작품을 발견했노라며 인사동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 그림 어때요? 제가 보기에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깊이감도 있고 작가 활동도 아주 활발한 것 같아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들 이야기를 말한 것 같거든요. 무식해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어 보이거든요. 제가 바로 본 것인가요?”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시장을 다닌 소견이라며 밝히는 그분의 시각은 이미 아마추어는 아닌 듯 보인다. 어느 여자대학교 동문전 성격의 전시였는데 참여 작가 중 한 분이 아는 사람이어서 그분이 말하는 화가를 소개받았다. 작품을 판매해본 경험 없는 젊은 화가라서 자신의 작품이 팔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가격은 알아서 달라고 한다. B4 정도의 크기 작품이었는데 35만원에 합의가 되어 그분에게 전해주니 그 자리서 선뜻 구매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후로 6개월에 한 점씩 작품을 사더니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이 맘에 드는 작품은 어떻게든 기어이 구매하고야 마는 형태로 변해 있었다.
“선생 만난 것이 나에게는 복이기도 하고 흉이기도 해. 그림이 좋아져서 취미 이상의 것이 된 것은 고맙지만 그림 사는 데 돈이 너무 들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세 점이 고비야. 사람이 살면서 그림 한 점 정도는 살 수 있거든. 그림 세 점을 집에 걸어두니까 뭔가 허전 하더군. 미술을 보는 재미가 있어. 문화센터에서 ‘미술품 수집과 감상법’이라는 수업을 반년정도 들었어. 내 의지가 생긴 거야.”
‘삼세판’이라고 했던가. 세 번의 경험이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 역시 세 번째 개인전이 가장 힘겹다고 한다. 첫 전시는 부모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서 하고, 두 번째 전시는 주변의 아는 분들에게 작품 강매해서 하고, 세 번째 전시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 번째 전시에서 작품이 판매되지 않으면 자신을 책망하면서 많이 힘들어 진다고들 한다. 조용한 미술 애호가인 그분은 여전히 작품을 구매한다. 과거와는 달라졌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나, 예쁜 작품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풍경이나 경험했던 감성 같은 것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성과 환금성, 소장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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