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예술은 사기일까?

박정수 (작가·미술칼럼니스트)

김유진

| 2010-05-11 19:08:10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이해하지 못하면 속은 느낌

2000년 고고학의 권위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희대의 사기극이 일본 고고학계를 흔들어 놓았다.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운 후 1972년 발굴 작업에 참여하여 1981년에는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4만여 년 전의 석기 발굴을 시작으로 그가 발굴하는 현장에서는 항상 유물이 나와 ‘석기시대의 손’이라고까지 칭송을 받은 사람이었다.

당시까지 일본의 인류 역사는 기원전 5만-7만 년 전으로 보고 있었는데 후지무라에 의해 일본의 인류 역사가 70만 년 이상으로 올라갔었다. 2000년 몰래카메라에 유물을 묻는 모습이 포착되기 전까지는 최고 권위의 고고학자였음에는 틀림없었다. 미리 준비한 유물을 수십만 년 전 퇴적층에 묻는 수법으로 일본의 인류 역사를 수십만 년 전으로 끌어올렸으니 희대의 사기극인지, 지나친 애국심의 발로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사기’가 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의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1984년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한국에 입국한 백남준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우주 중계로 연결해 KBS-TV를 통해 발표된 그의 예술 세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천재적 아티스트, 비디오 예술가, 행위 예술가라는 말을 듣기 전 그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아왔을까. 1953년 7월 27일 남북이 휴전 협상을 하기 이전,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에 20살의 나이로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문과에 입학한 이후 그는 국내에 전혀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30여 년 만에 한국에 입국하여 남긴 말이 ‘예술은 사기’라는 말이다.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어떤 가수는 군대를 피하기 위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자 국내에서 활동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석고 데생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석고로 만들어진 원기둥?원뿔?삼각기둥?삼각뿔을 그리다가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조각상을 연필로 그린다. 아이리스(그리스의 신인 타우마스와 바다의 요정 엘렉트라의 딸), 비너스, 아그리파(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부관) 등을 그려야 한다. 대다수의 것들이 과거에 만들어진 조각상에서 흉상 부분만 석고로 제작한 것들이다.

그때부터 흰색 석고 모형을 그리면서 입체감을 살려라, 동선이 없다, 빛의 흐름을 따라라 등등 아주 어려운 배움의 길을 간다. 고등학교 3학년 하반기가 되면 미술학원 등지에서 아주 잘 그린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께 자랑이라도 할라치면 그림을 보는 가족들은 아주 무덤덤하다. 연필로 얼굴 그려놓은 것을 왜 잘 그렸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부모님 눈에는 입체감이나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평면의 종이 위에서 어떤 입체감을 찾으라는 것인지 최면에 빠지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