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안은영
| 2010-11-21 14:51:20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수능이 끝났다.
지금은 ‘수학능력평가’지만 우리 때는 ‘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대학입시를 치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인생을 걸고 올인한 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미래에 결정타로 작용하는 현행 수능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른 희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일 아침의 악운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수험생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지 싶다.
실제로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그동안 쌓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불운이 전체 인생 의 멍에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통한은 당사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도 시험 보는 날 아침 갑자기 몸이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가 이후의 인생이 계속 꼬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지켜봤는데 여간 딱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현재의 수능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매번 말하는 바지만 학생들에게 몇 번의 실력 점검 기회를 주고 그 가운데 가장 유리한 성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수능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학 입학의 여러 평가기준 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해서 전공의 적합성 여부 등을 면밀하게 진단하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당사자의 미래는 물론 대학과 국가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1점 차이의 당락 결정이 학생 선발에 있어 어떤 타당성으로 작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선택이 어려울 때 한두명 정도의 범주에서 입학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대학에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수능이 대학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일 뿐 인생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결정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잘못 치렀으면 잘못 치른대로 다음 인생을 준비하겠다는 현명함과 자신감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미래의 목표를 구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지나친 자만이나 좌절은 정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 것으로 됐다.
일희일비도 금물이다. 낮은 자세로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매사에 일희일비하면서 끌려다니는 사람의 인생은 실패하게 돼 있다.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던 에디슨,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대학입학이 거부됐던 아인슈타인, 명문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레이건 대통령, 무엇보다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이도 굴지의 재벌가를 이룬 삼성이나 현대 창업주들의 성공한 인생을 보라.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은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혹여 주위에 이번 시험으로 마음을 다친 수험생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따뜻하고 큰 애정으로 품어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시험 말고도 그들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잡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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