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리더십’ 세계가 주목하다
하버드대 ‘박정희 시대’ 출간...4월1일 일반에 시판
관리자
| 2011-03-20 01:30:00
[시민일보] 오는 4월 1일 미국 하버대에서 발간한 ‘박정희 시대(The Park Chung Hee Era)’란 제목의 논문집이 일반에 시판된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와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공동 편저한 논문집은 744쪽의 방대한 분량의 논문집은 박정희 시대의 역동적인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겔 교수는 <중앙선데이>와의 e-메일 서신에서 논문집을 출판한 동기에 대해 “박정희는 의심할 바 없이 한국 근대화의 길을 돌파해 낸 핵심 지도자다. 그럼에도 박정희 시대는 한국 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공과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그런 탓에 박정희 시대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비슷한 맥락에서 덩샤오핑(鄧小平)과 관련한 책을 올 가을 하버드대에서 출판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한국 현대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라는 질문에 “존 페어뱅크 교수와 고(故)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를 포함한 많은 학자가 동아시아 국가의 발전 경험에 주목했다. 나 역시 일본·중국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의 발전에 관심이 많다”고 답변했다.
또 공편자인 김병국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출판 배경에 대해 “박정희 시대의 공과는 국내에서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역사는 무 자르듯 공과 과로 나우어지지 않는다. 약탈국가대 주권국가, 주권대 종속, 보수대 진보의 이분법으로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이번에 출판된 책은 박정희 시대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잣대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라는 질문에 “거시지표로 보면 평균 성장률 8.5%의 고도성장시대였다. 하지만 경제 성장만 놓고 보더라도 폭과 깊이가 널뛰기했던 불확실하고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13%를 성장한 시기가 있지만 저성장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시기도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언제든지 바닥날 수 있는 불안한 나라였다. 8.5% 성장률 속엔 수많은 고민과 긴장과 갈등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엄청난 리스크 테이크를 하는 모험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택하지 않을, 또 택하지 못할 리스크를 계속 선택해 나갔다. 박정희의 전략은 3H로 설명할 수 있다. 고위험, 고성장, 고비용(High risk, High payoff, High cost)이다. 민간부문과 기업을 확장시켰지만 시장방식이 아니었다. 1965년엔 정기예금 금리를 하룻밤 새 연 15%에서 연 30%로 올려 은행으로 돈을 끌어 모았지만 대출 이자율은 그보다 낮춰 투자 위축을 막았다. 역금리제다. 또 사채시장을 혼수상태에 몰아넣은 1972년의 8·3 사채 동결조치도 마찬가지다. 재정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채무를 완화시켰다. 그런데 그런 돈이 기업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겠나. 대박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대박 나게 만들었고, 그러기 위해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랐다. 박정희는 그런 길을 갔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그런 길을 가게 된 원인에 대해 “당시 한국은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커다란 무역적자를 메우려면 수출이 신장돼야 했는데 수출을 늘리기 위한 기술과 자원이 부족했다. 고학력자의 높은 실업률은 정치·사회 불안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 어려운 길을 가던 한국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바꿨다”며 “그것은 기존 이론처럼 개발국가론의 관료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박정희의 리더십을 연구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규모가 중간 정도의 국가라면 60년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케네디 라운드로 선진국의 관세 철폐가 대대적으로 이뤄져 수출 진흥을 통한 산업화의 창이 열렸다. 선진국이 된 일본은 해외에서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의 산업화는 수요가 확대되면서 생산 쪽에선 기술이전이 가능한 시기에 일어났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향후 세계무역은 그런 방식의 산업화가 어렵도록 체제가 바뀌었다. 한국은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갈 수 있는 막차를 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막차인지 여부는 박정희도 몰랐을 것”이라며 “다만 잘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두 자릿수 고속 성장으로 달려 나간 중국을 생각해 보자. 그때 기회를 놓쳤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정말 어려웠을 것”고 술회했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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