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미리 치른 자신의 장례식
이기명 시사평론가
안은영
| 2011-06-14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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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시사평론가)
자신이 죽는 날을 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될까. 죽음이란 절체절명의 운명적 한계를 두고도 인간은 매일 무심하게 산다. 태연하게 산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오묘한 해석이야 철학자들의 몫이겠지만 평범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죽음이란 절실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은 모든 것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끝이기 때문이다. 미리 치른 장례식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있다. 며칠 전 친구가 미리 장례식을 치렀다. 아는 사람은 알 수 있는 유명한 방송작가다. 아마 ‘꽃피는 팔도강산’과 ‘꽃동네 새동네’란 TV드라마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이른바 막장드라마라는 것이 아니고 정말 재미도 있고 유익한 드라마였다. 방송작가로는 유일하게 훈장까지 탄 작가다. 나이 74세. 살만큼 살았다고 되뇌던 친구다. 형제보다 더 가깝게 아랫집 윗집으로 함께 다니며 살았다. 물었다. ‘장례식 날짜 받아놓으니 어떻더냐, 장례 치르고 다시 살아나니 어떻더냐.’ 간단했다. 텅 비더라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남는 것은 착하게 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더라는 것이다. 더없이 착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친구가 ‘착하게 살 걸’ 하고 후회를 남겼다면 나와 같은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한동안 멍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장례식을 치르는데 친구들이 모두 슬퍼하더라는 것이다. 진짜로 떠나보내는 것처럼 울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눈물을 흘렸다. 친구처럼 내가 미리 죽는 날을 안다면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고 그 광경을 내가 본다면 어떨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하겠지만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죽음과의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삶이란 언제나 죽음과 마주 보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서 따져보면 더 없이 겁이 날만도 한데 잘들 지내는 걸 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죽음이기에 그렇게 적응한 것 같다. 자주 하는 말인데, 삶과 죽음 중에서 삶이야 맘대로 못하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자살자가 생긴다. 요즘 자살자가 참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고와 질병이 많은 자살자를 만든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발각되어 자살을 하기도 한다. 아무 죄도 진 것이 없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게 억울하고 변명도 통하지 않아 ‘세상이 싫다, 억울하다’는 유서 한 장 남기고 생을 버린다. 시험성적이 나쁜 학생이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목숨을 끊는다. 등록금 내주지 못한 아버지가 딸에게 미안하단 유서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외치며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다가 스스로 분신을 한다. 그 많고도 많은 자살의 유형을 어찌 다 구분하랴. 죽음을 실제로 체험할 수는 없어도 친구의 생전 장례식을 보고 느낀 것이 너무 많다.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친구가 느낀 인생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착하게 살지 못한 걸 후회했다는 것 말고도 얼마나 많았을까. 맹수도 죽음 앞에서는 양순해진다고 한다. 짐승한테 물어본 것도 아니고 맹수도 병들고 늙어 기운이 쇠잔해 보이기에 양순해 보이는 것을 것처럼 느낀 게 아닐까. 장례식 미리 치른 친구가 말했다. 장례식에 온 친구들을 보니까 느끼는 것이 참 많더라는 것이다. 저 중에서 진정으로 자신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하기도 끔찍한 것이지만 자기 죽은 것을 좋아할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더라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가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을 생각하면 말을 잃는다. 다시 보지 못할 사람을 애도하며 수백만의 국민이 눈물을 흘린 장례식이 있었다. 만약에 그 많은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했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정치도 인간이 하는 행위다. 정치가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은 우리 인간생활이 정치의 지배를 너무 많이 받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를 하면 사람들은 행복하고 나쁜 정치 밑에서 사람들은 불행하다. 무엇이 좋은 정치고 무엇이 나쁜 정치인가. 사람마다 판단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같아야 한다. 정치를 어디에다 기준을 두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인간존중이다.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제 복은 제가 타고난다고 하지만 정치는 잘못 타고난 복도 좋은 복으로 돌려놓아야 하고 이것이 좋은 정치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좋은 정치는 함께 추구해야 하고 함께 행복해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재산을 쌓아 두고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난에 찌들어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없다면 그건 나쁜 일이다. 수십만의 신도를 가진 종교 지도자가 범법자가 되어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 이건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권력이 있다고 법을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해서 고통을 주면 그건 나쁜 정치다. 나쁜 법은 바로 잡아야 하는데 청와대 말 한마디로 없는 것이 되어 버리면 그건 나쁜 정치다.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면 좋은 정치고 좋은 정치가다.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다.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짓말도 할 수 있지 않으냐고 강변한다. 이건 아니다. 이건 좋은 정치도 좋은 정치가도 좋은 인간도 아니다. 맹수는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게 최선이고 그것은 그들의 정의다. 인간은 다르다. 대의와 명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냥 동물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동물의 세계인가. 아니다. 인간의 세계다. 따스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함께 살아야 한다. 거리에서 파지를 주어 수레에 싣고 가는 할머니 손에다 누가 볼까 동전 한 닢을 쥐여주고 가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배워야 사람이 된다고 했다. 사람이 되는지는 나중에 일이고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 허나 그냥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 등록금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인가. 진리를 가르치는 대학이 쌓아 놓은 적립금이 수천억이라 하고 대통령은 선거공약에 등록금을 반으로 줄인다고 했다. 애들 주먹구구식으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한다. 그걸 국민에게 믿으라는 것인가. 학생들이 어거지 쓰는 철부진가. 명진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러다가 국민의 원수가 아니라 국민의 웬수가 될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고통이 쌓여가는 사람이 있다. 하루가 가면 하루만큼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사람들 눈에 빤히 보인다. 이러면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이라도 속이 불편할 것이다. 하물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국민들이야 다 말해 무엇하랴. 비록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으로 반대자라 할지라도 죽도록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냥 미움이라면 그 또한 인간적이다. 권력이 무상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권력자들이다. 그들이 마구 휘두르는 권력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봐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허망하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다. 권력을 가졌다고 자기 맘대로 할 생각이라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남의 얘기 많이 들어보면 얻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열린 눈과 귀가 필요하다. 자신의 장례식을 한 번 미리 치러 보면 많은 것을 깨우칠 것이다. 자신이 죽은 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행복할 것인가. 인간의 스승은 어디든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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