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시험대 올랐다

北, “회담 무산 南 책임”...野, “기 싸움으로 본질 놓쳐”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 2013-06-13 15:19:51



朴 대통령 ‘담담’... 靑,“양비론은 북에 면죄부 주는 것”


[시민일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지난 11일 남북 당국회담 무산으로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



북한이 남북당국회담 무산 책임을 우리 정부 탓으로 돌리자 민주당 등 야당은 ‘양비론’으로 정부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다며 몰아세우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



북한은 13일 "우리는 털끝만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며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남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측이 처음부터 장관급회담을 주장하고 실지로 통일부 장관을 내보낼 의향이라고 몇번이고 확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개최되기 직전 수석대표를 아래급으로 바꾸어 내놓는 놀음을 벌렸다"며 "북남 대화역사에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해괴한 망동으로서 무례무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이어 "우리는 판문점연락통로를 이용해 남측이 부당한 입장을 철회하고 우리와 같은 장관급 수석대표가 나오도록 거듭 요구했으나 남북문제를 협의, 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는 통일부 차관이라고 강변하면서 저들의 부당한 주장을 끝까지 고집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따른 야당의 비난도 거세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모적인 기싸움으로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본질을 놓쳐버렸다",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눈물과 수십만 이산가족의 찢어지는 가슴과 심경을 헤아린다면 교착국면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일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게 중요한데 대화의 형식에서부터 너무 원칙만 고집하다 보니 신뢰구축의 기회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남북회담에서 종종 우리 측 수석대표의 격이 더 높은 경우가 있음에도 선(先) 대화를 위해 문제 삼지 않았던 전례를 감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비핵화를 포함해 북한이 올바른 변화의 길로 나아가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경제공동체까지 구축하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고비를 맞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자신의 원칙론에 입각한 대북 기조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은 줄곧 "북한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도발과 적당한 타협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북한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는 방향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원칙으로 고수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같은 박 대통령의 원칙은 지난 4월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에 이어 우리측 근로자 전원철수 결정으로 남북관계가 중대고비를 맞게 된 시점에서도 변함이 없었고, 결국 북한의 전격적인 남북 당국자 간 회담 제의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남북 당국회담이 수석대표급의 '격(格)'에 따른 북한의 반발로 무산되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원칙론이 오히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대해 박 대통령의 입장은 흔들림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굳이 표현하자면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담담하다"며 "(당국간 회담 제의) 얘기 나올 때도, 진행이 됐을 때도, 그 이후에도 그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남북당국회담 무산을 놓고 제기된 '양비론'에 대한 야권의 비판과 관련해서는 "누구든지 다 일반적·상식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두번 세번 설명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간 격이 맞지 않는 과거 회담 관행은 '국제적 기준만이 아니라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대통령은 대화 상대의 격은 합의안이 얼마나 잘 지켜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상호신뢰와도 연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의중은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며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부터 원전 부품 비리, 남북당국회담의 격 문제까지 모두 그동안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정상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번 회담 무산을 놓고 야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양비론 차단에도 나섰다.



야당이 남북 당국회담 무산과 관련해 북한의 태도와 박 대통령의 대북기조를 한꺼번에 비판하자 문제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회의론 진화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잘못된 것으로 구분했으면 바르게 지적을 해줘야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며 "양비론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속가능하고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바라고 원한다면 잘못한 부분은 명확히 지적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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