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칼럼] 상식을 벗어난 판사의 결정
이영환 건국대 교수
이영환
| 2014-05-14 15:08:24
1972년 6월 워터게이트호텔을 도청장치를 설치하러 들어간 닉슨의 보안요원이 잡히고 난 후 닉슨은 미 정보부(CIA)를 시켜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방해하는 한편 “삼류 도둑”들의 도둑질로 호도했다. 이들의 은폐공작은 성공하는 듯 했다. 그 해 11월 선거에서 닉슨이 대통령선거에 재선에 성공했고 “삼류도둑”들에게 위증하도록 금전으로 회유하는 동시에 협박했다.
이 때 한 익명의 제보자가 워싱턴 포스트기자에게 정보를 건네지 않았다고 하면 닉슨 대통령의 불법은 역사에서 가려졌을 수도 있다. 훗날 이 익명의 정보제공자는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라는 것이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33년후인 2005년에야 알려졌다. 연방경찰의 부국장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마크 펠트는 백악관의 참모들을 체포하게 하려면 신상의 위험까지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흥미로운 것은 닉슨 사임 후 그는 자기가 "깊은 목청(Deep Throat)"라는 별명의 정보제공자였다는 것일 일찌감치 인정하고 워터게이트의 숨은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95년 닉슨이 사망 한 후 거의 10년이 지난 후 까지도 자기가 제보자라는 것을 숨겼다. 어디엔가 남아있을 지도 모를 닉슨의 지지자로부터 받을 보복이 그만큼 두려웠던 것이다.
연방수사국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마저도 신상에 위해가 있을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일반인은 어떨까? 자기가 소속해 있는 단체와 그 리더의 비행이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것은 개인적 희생을 무릅쓴 각오와 용기가 아니면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그 단체가 멤버들간의 결속력이 있어서 배반자를 심하게 단속하는 단체라면 내부고발자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사이비 종교 단체나 유사 결사 단체들은 온갖 범죄와 인권 유린의 온상이 되고 있어도 쉽게 발견되지 않고 혹시 발견되더라도 범죄입증이 어렵다. 내부 고발자는 동료 혹은 신도들에게 배반자로 낙인 찍히고 복수를 피해서 도망 다니는 생활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은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만들고 신분 세탁까지도 보장 해주는 등 내부고발자의 안전과 인권을 세심히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자 보호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범죄자의 안전과 인권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해준다. 피의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게 하고 수갑 찬 손은 수건으로 덮게 한다. 범죄자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름이 아닌 ‘김XX’ 혹은 ‘이XX’ 등으로 표기가 된다. 때로는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가해자나 범죄자의 인권이 더 보호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는 성범죄자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한다고 해놓은 법무부 알림e 싸이트는 주민번호 인증을 한 후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으면 성범죄자에 대한 검색이 불가능하다. 성범죄자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미성년자는 주민번호가 발급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차단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성범죄자들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이름과 사진과 범죄 내용과 정확한 주소까지도 알 수 있는 외국의 사례와는 참으로 다르다.)
이렇듯 범죄자에 대한 인권은 세심하고 철저하게 보호해주면서 내부고발자를 일반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증언하게 한다는 결정은 상식을 벗어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한다고 겨우 한 겹 달랑 쳐놓은 차단막이다. 이것을 걷어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은 내부고발자의 담대함을 시험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석기씨와 그를 따르는 분들은 그렇지 않아도 법원 앞 시위와 법정 소란을 반복하면서 사이비종교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법정에서 판사가 그들을 고발한 증인을 보호해 주지는 못할 망정 그의 용기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이다. 증인은 증언을 통해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목격한 것 등을 진술하면 된다. 그의 증언의 진실성을 증명하거나 허구성을 증명하는 것은 검사나 변호인이 할 일이다. 증언대에 선 증인이 얼마나 담대한지 시험하는 것으로는 법원의 역할이 아니다.
필자는 결코 이석기씨를 유죄로 단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석기씨와 관련 피의자들의 유-무죄는 법이 정한대로 법정에서 삼심(三審)을 거치면서 충분한 소명을 하고 난 후 판사들의 숙고를 거친 후 가려질 것을 믿고 싶다. 그러나 과거 이러한 믿음을 배반하는 비정상적인 판결이나 자의적인 법 적용이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가령 세모의 법정관리인이 구원파 신도였다는 것은 상식의 궤도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유착이나 부패의 연결고리까지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사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공범자는 바로 법정이다. 구원파 신도를 세모의 법정관리인으로 세우고 유병언씨 등이 이름만 바꾸어 빚을 털어내고 법을 무시한 경영을 게속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부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세월호 참사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법원장이다.)
이번 이석기씨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만일 이석기씨 등이 진실로 범죄집단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범죄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해야 한다. 유병언씨처럼 어떤 이유에서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세월호가 아닌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경우가 생긴다.
생각해보라. 마크 펠트에게 닉슨 대통령 앞에서 증언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33년이 지난 후에야 자기가 내부 고발자였다고 고백했다는 것을 이민걸 판사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자의적인 잣대로 내부 고발자의 담대함을 법정에서 시험해서 남을 것은 객관성의 상실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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