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칼럼] 집단지능의 시작점 ‘가만히 있으라...고?’

이영환 건국대 교수

이영환

| 2014-06-08 15:55:54

▲ 이영환 건국대 교수 군중(crowd)은 파괴적이며 폭력적이다.

귀스타브 르봉이 발견한 프랑스 혁명 중의 18세기 군중은 어이없을 정도로 극도로 열악한 정신상태를 갖는다. 단지 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군중에서의 개인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탈억제적이 된다. 이들은 최면술에 걸린 사람이 최면술사의 암시를 기다리듯 암시가 주어지기를 기다린다. 군중심리는 때로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혁명을 이루어내지만 많은 경우 그 속의 개인은 이미지와 감정으로만 사고하고 집단환각 현상을 보인다. 이들은 파괴적이고 잔인하며 이해타산 능력을 상실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누군가의 꼭둑각시가 된다.

예를 들면 지미 존스를 “대디(Daddy)”라고 부르던 인민사원(People’s Temple) 추종자 구백여 명은 가이아나의 밀림속에서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지미 존스와 함께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집단자살을 했다. 역사적으로 히틀러 등의 독재자들과 지미 존스 등의 사교 교주들은 이런 군중심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민주세력’은 아직도 18세기식 군중심리에 의존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군중심리를 자극하면서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군중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목격되는 집단지능에서 발견되는 21세기의 공중(public)은 르봉이 목격한 군중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집단지능에서의 공중은 평화적이며 이성적이고 이타적이다.

이들의 선한 의지는 서로 협력하여 위키백과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백과사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컴퓨터 운영체제를 서로 협력하여 개발하고 이를 공개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수십 대의 슈퍼컴퓨터로도 풀 수 없는 매우 어려운 과학의 난제들을 집단지능을 이용하여 풀려는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다. 그 중에는 아미노산 체인으로 이루어진 단백질 분자가 잘 못 접힌 곳을 찾는 폴드잇(FoldIt) 과 RNA 합성의 비밀을 푸는 이터나(eteRNA)라는 집단지능을 이용한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들의 특징은 연구 실험 자체가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까지 게이머로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게임을 하는 것이 곧 연구를 하는 행위다. 일반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적 난제들을 풀어나간다. 필자는 수만 명의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게이머 연구원들의 집단지능 그룹이 노벨 의학상 등을 수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집단지능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혼합된 형태가 과학 분야만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인구가 늘어남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대의 민주주의는 스마트 기기의 영향으로 정책이나 정치적인 의사 형성 과정에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지능적 참여 민주주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

케냐에서는 2008년 1월 케냐 대통령 선거 후 대통령 후보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가 대통령 선거를 조작했다는 소문과 함께 폭력을 조장하는 소문이 텍스트 메시지로 퍼졌고 부족간의 감정과 정치적 테러가 퍼져나갔다. 이에 공공 뉴스 채널이 다루지 않는 정치테러를 취합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우샤히디 (스위힐리어로 ‘증언’혹은 ‘증인’이라는 뜻) 시스템은 집단지능적 노력에 의해서 케냐에서의 테러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여 이를 중지시키고 재검표를 끌어내고 연합정부를 세우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샤히디는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현재 세계의 약 40여개 국에서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이렇듯 집단 지능의 구현이 사회정치 분야뿐만이 아니라 과학 산업의 창조경제 구현에 매우 중요함에도 우리나라에서의 집단지능 구현은 매우 저조하다. 얼마 전부터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가만히 있으라…고?”라는 모바일 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 앱은 우리 주위의 부정, 부패, 비리 등을 고발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온오프 혼합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해 분노하며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할 때 폭력적 파괴적 군중심리가 아닌 평화적 이타적 집단지능이 발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족: ‘집단지성’이라는 단어가 ‘집단지능’ 보다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고 필자는 본다. 최근 몇몇 저자 분들이 ‘집단지능’이라고 쓰는 것을 보고 필자도 용기를 내어 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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