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정부수반 가옥 문화재 산재
근현대 '정치 1번지'의 흔적… 김구ㆍ이승만 리더십을 만나다
이대우 기자
nice@siminilbo.co.kr | 2014-06-10 14:11:29
| ▲ 야당의 피난처였던 윤보선 가옥내 산채정의 모습.
區, '장면 가옥' 인근 부지 매입 책상ㆍ만년필 등 삶의 기록 전시 김구 선생 서거 장소인 '경교장' 사무공간ㆍ서재ㆍ숙소 모습 복원 [시민일보=이대우 기자] 조선시대 정치는 왕이 살고 있는 궁궐이 주무대를 이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정치인이 돼 종로에 자리잡게 됐다. 이들 중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국무총리나 대통령이 되는 사람들이 나오자 종로는 정치 1번지라는 명성을 떨치게 됐다. 현재 경복궁과 창덕궁 주변의 종로구 삼청동, 인사동, 북촌에는 한 시대를 호령했던 정치가들이 모여 살던 가옥들과 흔적이 남아있다. <시민일보>는 이러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정부 수반들의 남아 있는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근대 주거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 ‘장면 가옥’ 대학로 부근 동성로 회전교차로 작은 도로를 따라 가면 흰 담벼락에 둘러싸인 아담한 가옥이 있다. 초대 주미대사와 부통령, 국무총리를 거친 장면의 가옥(혜화로5길 53)이다. 가옥은 대지 403㎡에 안채와 사랑채, 경호동 등으로 이뤄져있다. 장면 전 총리는 1936년 동성고등학교 교장 재직 당시 집을 지어 19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을 지켰다. 등록문화재 제357호인 ‘장면 가옥’은 1937년에 지은 한·양 절충식 가옥으로 당시의 주택 개량 운동과 신주거 문화 운동의 영향이 남아 있어 근대 주거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안채, 사랑채 등 내부공간에는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가 아끼던 책상, 흔들의자, 만년필 등을 삶의 기록들을 모아 전시해 두었다. 종로구는 지난 3월 장면 기념사업회와 협약을 맺고 장면 가옥 인근 부지를 매입했다. 구는 오는 2016년까지 장면 기념관을 세워 더욱 많은 시민들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장면 총리가 보여준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을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구 선생의 마지막 순간이 남겨진 ‘경교장’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새문안로 29)은 해방 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린 곳으로, 1949년 김구 선생이 서거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경교장은 광복 이후 통일·반탁 운동을 하며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그리던 장소였다. 김구 선생의 철학을 담은 ‘나의 소원’도 이곳에서 쓰였다. 876㎡(265평) 면적의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경교장은 김구 선생 서거 이후에는 미군 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쓰였고, 1967년 고려병원(현재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 원무과와 의사 휴게실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3년여의 복원을 통해 2013년 3월 다시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경교장 1층에는 임시정부 회의가 열렸던 귀빈 응접실과 각종 행사가 열린 귀빈식당, 임시 정부의 사무공간 등이 있고,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서거 당시 현장을 재현해 둔 서재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 거실 등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특히,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혈의(血衣)와 북한내 민주세력들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북한 내부 동향이 담긴 속옷밀서 등 유물이 눈에 들어온다. ■초대 정부 내각이 탄생한 ‘이화장’ 경교장과 함께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화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이 살았다. 광복 후 거처 없이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박사에게 지인들이 이화장을 기증하면서 살게 됐으며,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이화장내 생활관에서 살고 있다. 이화장은 5950㎡ 면적에 생활관, 대통령 당선 후 내각을 구상했던 조각정, ‘이승만 기념관’으로 쓰이는 건물 등이 남아 있고, 건국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이승만 동상이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제정됐고 2009년에는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이승만 기념관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해왔으나 2011년 산사태로 건물 내부에 흙더미가 쏟아져 들어와 오는 10월까지 복원 공사 후 다시 개방할 예정이다. ■야당 정치의 피난처, ‘윤보선 가옥’ 북촌 인근에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작은 골목의 긴 담벼락을 지나 담장 중간쯤 있는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도심 속에 숨겨진 비밀 정원을 가진 한옥이 있다. 4628㎡ 규모의 비교적 넓은 대지에 서양식 정원은 물론 사랑채와 안채, 창고까지 갖춘 윤보선 전 대통령의 가옥이다. 7세에 이곳으로 이사한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시에도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서 집무를 보았다. 건물의 외형은 한옥처럼 보이지만 윤 전 대통령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 보았던 중국식 가옥의 형태로 일부 수정돼 독특한 한·중 양식이 혼합된 가옥들이 있다. ‘산정채’라 불리는 사랑채에는 구한말 개혁가였던 김옥균이 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은 김구, 이승만, 조병옥, 김성수 등이 참가한 한국민주당의 산실이 된 곳으로 1950~70년대 정치 탄압을 피해 야당의 사무실과 회의실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야당 인사들의 출입으로 윤보선 가옥 맞은편에는 당시의 정보기관이 윤 전 대통령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망루 형태의 건물도 있다. 종로구는 여러 증언과 회고를 바탕으로 이 건물을 미래 유산 예비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통일을 꿈꾸었던 곳 ‘김상협 가옥’ 혜화동 서울 성곽 인근에는 높은 대지에 축대를 쌓고 돌계단을 올라야 대문이 나오는 독특한 가옥이 있다. 제5공화국에서 16대 총리를 지낸 김상협 전 총리의 가옥이다. 1930년대에 도시 개발과 함께 지어진 가옥은 안채, 중문채, 사랑채, 별채 등 한옥의 구성과 닮아 있으나 기존 한옥에서는 찾기 어려운 작은 정원 등이 함께 있어 한옥에서 양옥으로 옮겨가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후손들이 계속 살아오며 잘 관리한 손때 묻은 흔적이 가득하다. 김 전 총리는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며 교육부 장관과 두 번의 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교수 재직 당시 그가 남긴 ‘모택동 사상’은 냉전 시대 교류가 없던 공산권 국가들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됐다. 1982년 국무총리로 발탁됐지만 재임 1년3개월 만에 아웅산 폭파사건을 계기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적십자 총재로 활동하며 평양을 방문하고, 중국, 소련 등 공산국가들과 민간교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구는 앞으로도 의미있는 근대 문화재들을 추가로 발굴해 역사·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명소들을 발굴하고, 지도자들이 삶으로 남겨준 유산들도 잘 보존해 문화도시로서의 자부심과 정치 1번지라는 명성을 지켜나갈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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