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李-親盧, ‘이원집정부제’ 개헌 손잡나

고하승

| 2014-10-26 16:06:17

편집국장 고하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중국 상하이발(發) ‘개헌봇물’ 발언 이후 정치권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개헌론으로 들끓고 있다.

단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여기저기서 개헌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귀국직후 자신의 발언을 “실수”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사과하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만일 김 대표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사실 지난 16일 김무성 대표의 입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 그것도 하필이면 오스트리아 식으로 개헌하자고 할 때 필자는 귀를 의심했었다.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김 대표가 언급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이 의원의 오랜 숙원으로 그는 MB(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줄기차게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요구해 왔었다.

정치권 안팎에서 김 대표의 방중 길에 동행했던 이 의원이 개헌과 관련해 김 대표와 교감을 나눴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박근혜 손학규 등 여야 유력대선 후보들의 반대로 개헌론이 힘을 얻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김 대표의 입을 통해 그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재오 의원 역시 김 대표와의 교감설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국회 입성 동기”라며 “눈만 보면 뭘 말하는지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왜 김무성 대표는 친이계 이재오 의원과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의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분권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좋아 ‘분권형’이지 자신들이 영구집권 하겠다는 불손한 의도가 숨겨 있음을 국민들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2012년 11월 7일 필자는 <친이-친노, ‘분권형 개헌’ 밀월>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친이계와 친노계의 밀월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은 ‘분권형 개헌’에 대한 집착이 대단 했었다”며 “이재오 의원 등 새누리당 친이계가 잇따라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이슈 띄우기에 나섰고, 민주통합당의 친노계가 이를 적극 반기는 분위기”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는 오스트리아에서의 대통령은 비록 국민이 뽑지만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지명한 총리는 행정부 통할, 법률안 제출권, 예산편성권, 행정입법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즉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들이 지명한 총리의 권한이 더 막강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의 최고 통치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다.

당시 친이계와 친노계가 이런 방식의 개헌을 꿈꾼 것은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박근혜 후보가 있는 한 자신들이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친이계와 친노계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위해 손잡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친노계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27일 발매될 CNB와의 단독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오스티리아식 개헌 방향과 동일하냐는 질문에 “똑같다. 분권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김 대표하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친이계와 친노계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추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빤하다.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새무리당 김무성 대표나 친노계의 수장인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이 국민투표로는 도저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의 김 대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야권의 문재인 의원 역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크게 밀린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당권을 장악하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사실상의 통치권자인 총리가 되는 길뿐이다. 그렇게 양측이 야합할까 걱정이다.

한때 ‘노명박’이라는 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온 적이 있다. ‘노명박’이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의 합성어로, 친이계와 친노계의 연대를 의미하는 신조어이다. 부디 ‘노명박’이란 소리가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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