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국민들은 내각제를 받을 만큼 성숙되어 있을까?
이기문 변호사
이기문
| 2015-02-26 15:18:32
노회한 김종필(JP·89) 전 국무총리의 조문인사에 대한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5대 의원으로 당선되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기까지 김대중 총재의 특보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의당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이신 박영옥 여사께서 별[세하]신 데 대하여, 문상을 가야한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유명 정치인으로서 성장하지 못한 필자의 입장에서, 빈소에 직접 가서 문상을 드리는 것보다는 이 칼럼을 통하여 문상을 드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비는 마음이다. 아울러 김종필 전 총리의 의연함에 고개를 숙이고 싶다. 많은 여야 정치인들, 그리고 정계를 떠난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아, 노정객의 슬픔을 같이 하는 모습은 정치를 떠나서 우리 정치의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종필 전 총리의 과거의 문제는 이 칼럼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김대중 총재의 특보로서, 김대중 총재에게 DJP 연합을 제안하고, 내각책임제를 제안했던 필자로서, 그가 여야 정치인들에게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속에 와 닿는 부분들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문상을 받는 자리에서, 김종필 전 총리는 “난 내각책임제 주장하다 망한 사람이지만 결국 그 제도가 좋은 것 같아요. 5년에 뭐를 합니까. 대처가 영국에 툭하면 데모하고 파업하는 거 고쳤잖아요. 그런데 뭐 한 사람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어.”
의원내각제를 끊임없이 주장했고, DJP연합도 의원내각제를 관철하기 위하여 받았던 자신의 기억을 생생하게 토해낸 것이다. 내각책임제 주장하다 망한 사람이라는 자평이 바로 그 말이다. 김대중총재의 편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술회는 내 가슴을 저미는 부분이다. 1986년의 정치적 변화를 지내고 나서, 국민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선호하는 분위기였고, 그러한 정치체제는 10년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김대중총재와 연합을 하였다. 하지만, 끝내 내각책임제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지적대로, 5년 단임제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구상과 실천을 위한 5년은 진실로 짧은 기간이다. 그러기에 구상과 실천을 위한 방법으로 내각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참으로 바람직한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부패가 가속화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쉽사리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상을 온 문재인대표에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일찍이 정치는(정치인은) ‘허업(虛業)’이라 그랬어. 열매를 맺어놓으면 국민이 따먹지 정치인이 먹는 거 하나도 없어요. 묘비에 그런 감회를 써놨는데 언제 한번 시간 있으면 보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대통령 단임제로는 큰일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신념에 변화가 없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헌법 체제가 내각제로 바뀔 것이고 예견하고 있다.
내각제의 장점은 의원으로써 조직되는 국회(하원)의 신임 하에 내각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민의 반영이 행정부에 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회와 내각의 일치로, 현대 복지국가의 '일하는 국가'의 요청에 더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폐해는 국회의원의 부패가 가속화된다는 문제가 있고,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국가에서는 내각이 약체일 수밖에 없고 정국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양당제가 확립되어 있는 국가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점은 쉽게 극복 될 여지가 있지만, 어느 경우이든,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쟁(政爭)이 심화되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국가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민주화 정도에 따라 강한 여당이 국회와 정부를 지배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후진 국가에서는 도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정치 선진화가 이루어진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정책을 보고 국회의원들을 뽑아내는 성숙한 국가의 경우라면, 김종필 전 총리의 지적처럼, 내각제 도임을 검토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민들의 성숙도가 내각책임제를 도입할 만큼 성숙되어 있을까?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