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이나 한식이나”
남영진 한국감사협회 고문
남영진
| 2015-04-08 16:53:18
이왕 어려운 일을 겪는 건 마찬가지니까 먼저 부딪혀보자. 시간을 선택할 때 별 차이가 없다. 머 이런 때 쓰는 속담이다. 근데 왜 24절기의 하나인 청명과 우리 4대명절의 하나로 치던 한식을 붙여 말할까. 실제로 청명은 4월5일, 한식은 다음날인 6일이다. 거의 겹친다. 청명이 동지이후 6절기후인 춘분(3월22일)을 거친 다음 절기이니 5일 전후다. 한식은 24절기가 아닌 명절이지만 동지 후 105일이 지난날이므로 양력으로 청명과 거의 겹친다. 우리 4대명절인 설날, 추석, 단오가 다 음력인데 유일하게 한식만 양력명절이니 이상하다. 그만치 중국에서 유래된 책력이 어업에 긴요한 음력만이 아니고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인 양력까지 다 챙겼던 것이다.
이즘에야 좀 추워도 봄이 왔다고 느낀다. 봄꽃인 산수유 생강나무는 이미 시들어지고 개나리도 노란 꽃과 연두색 잎이 반반쯤 됐다. 벚꽃과 백목련은 이미 흐드러지고 진달래가 먼산을 벌겋게 물들일 때는 평지에선 철쭉, 영산홍 등이 짙은 보라색 빛을 물들인다. 그러나 이미 봄날은 가고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3월령에도 이미 이 시절을 ’모춘‘(暮春)이라 불렀다. 늦봄이라는 말이다. 꽃잎과 흐드러진 버드나무 새싹을 보며 봄이 왔다고 생각할 때 계절은 이미 여름으로 넘어가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감각이 계절보다 좀 늦다. 정학유는 다산 정약용의 큰아들로 아버지가 18년간 강진에 유배됐을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던 효자다. 그는 지금의 팔당댐위인 남양주 마재에서 살았으니 경기도의 농사나 날씨에 맞게 농민들이 해야 할 일들을 월별로 가사처럼 적어 놓았다.
작자에 관해서 이견도 있다. 2월령에 나오는 봄나물 중에 냉이 다래 씀바귀와 ‘물쑥’이 있다. 이 물쑥은 들과 산에 나는 쑥이나 인진쑥과 비슷한데 물가나 습지에서 자란다. 이를 뜯어 무쳐먹기도 하는데 부드러운 고사리 식감이다. 이 물쑥은 충청도 지방만 해도 없다. 물쑥은 추워서 보리이모작을 하지 못하는 경기도 서울주변 양주지방등지의 무논에서 난다. 다산의 고향인 마재지방의 농사풍습과 비슷해 대학자지만 일찍부터 농사를 지었던 정학유로 추정하고 있다.
농가월령가가 경기도지방 이북의 농사풍습임을 나타내는 것이 또 있다. 3월령에 한식전후 3,4일에 과일 접붙이기를 서둘러야한다며 단행, 인행(살구의 종류)과 배 사과 등을 드는데 정작 고염과 감을 접을 붙여야만 열매를 맺는 감이 없다. 온난식물인 감은 그때까지만 해도 경기도 이남지방에서만 잘 자랐다. 영덕 안동 상주 영동 논산등지 중부지방이 곶감의 주산지인 것만 봐도 안다. 물론 임진왜란 7년 이후 남쪽 울산 김해 하동 등에서 왜감인 단감이 들어왔지만.
왜 이즘 찬 음식을 먹는 한식명절이었을까? 한식의 의미는 정말 찬 음식을 먹는 날(寒食)이었을까? 여러 풍속사전에는 BC 6세기인 춘추시대 진문공과 개자추(介子推)의 고사를 들어 한식의 유례를 설명하고 있다. 고생은 같이하고 문공이 잘되어 어려울 때 견마지로를 다했던 개자추를 잊어버렸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불러도 오지 않자 산에다 불을 질렀지만 결국 타죽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다. 고생은 같이해도 영광은 같이할 수 없다는 한나라의 유방과 한신의 고사와는 또 다르다. 사람은 옛 은혜를 잘 잊는다는 경고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보다 더 확실한 건 불조심이다. 이즘 온대지방엔 봄바람에 심한 가뭄이 든다. 겨울 북서풍에서 여름 동남풍으로 바뀔 때의 가뭄이다. 여기에 한창 농사를 시작할 계절이니 긴 가뭄에 논밭은 갈라지고 무논에 벼묘도 키우기 쉽지 않다. 미리 물꼬도 확보해야하고 자연 산불에도 대비해야 한다. 산불은 조심해야하지만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인 불똥을 지키기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새 불을 나눠줬다는 고사도 있다.그 불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일깨우려한 것이 한식의 또 다른 유래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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