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아직 계엄령이었다구?

남영진 한국감사협회 고문

남영진

| 2015-04-12 16:32:45

▲ 남영진 한국감사협회 고문 동남아의 중심국인 태국이 지난4월 1일부로 10개월 만에 계엄령을 해제했다. 그렇다고 탁신이후 민주정부로 돌아간 건 아니다.

지난해 5월 프라윳 찬-오아 육군사령관이 쿠데타로 탁신 전총리의 여동생인 잉랏 총리를 실각시키고 정권을 장악해 6월에 집회시위의 자유,언론의 자유등을 제한하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프라윳총리는 2일 계엄령을 대신한 특별보안조치(임시헌법 44조)를 발령하고 그가 의장인 최고 군정기관인 국가평화질서회의에 계엄령보다 더 강력한 통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집중시켰다. 새 조치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입법 행정 사법부를 초원해 어떤 명령도 내릴수 있다. 우리 70년대 유신헌법과 비슷하다. 태국야당은 이를 ‘독재자법’이라며 비판했다.

민주정부였던 탁신총리는 2006년 부패혐의로 군부에 쿠데타로 실각해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되자 2008년 해외로 망명했다. 다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 방콕의 시가전(빨간셔츠와 노란셔츠의 투석전과 총격전)을 방불케 한 시위대의 총격사망까지 거쳐 총선거를 통해 탁신의 막내여동생인 잉랏이 정권을 잡았었다.

잉랏은 자신의 지지 세력인 농민과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갔다. 농민들에게 주산물인 쌀을 비싸게 사서 도시서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는 이중곡가제를 실시한 것이다. 또 쿠데타로 쫒겨난 오빠를 해외망명에서 귀국시키기 위한 사면조치를 추진하려다 야당의 반발을 샀다. 이것이 쿠데타의 빌미가 돼 또 방콕 시내를 점거한 시위를 거쳐 대법원의 판결로 총리직에서 추방됐고 이어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이번에 군부정권이 계엄령을 해제했지만 해외의 반응은 “태국이 아직 계엄령이었다구?”라는 평이한 반응이었다.

필자는 쿠데타후 막 계엄이 시작된 지난해 여름과 겨울 방콕시내의 아파트에서 한 달씩을 지낸바 있다. 지난 여름만 해도 시가전을 방불케 한 외신의 보도로 인해 방콕의 관광객이 줄어 시내가 어느 정도 한산했다. 노란당이 방콕시내 7곳을 점령해 교통을 마비시켜 잉랏총리에게 무조건 정권이양을 요구했으니까 시내가 어수선했다.

잉랏 정권은 조기총선을 통해 다시 재신임을 받아 정국을 돌파하려했으나 빨간당은 농민이 다수인지라 민주선거로는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자신의 편인 대법원을 통해 잉랏을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근데 지난 겨울에는 방콕주요 건물을 지키던 군인들도 없어지고 의자, 책상등 자리만 덩그렇게 남아있어 계엄령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한국교민들도 우리가 60,70년대 경험했던 군사쿠데타나 계엄령의 무시무시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만치 태국의 군부쿠데타는 정치적인 일상사가 됐다. 태국은 흔히 노란당과 빨간당의 양당체제다.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귀족계급과 군부, 국교라고 하는 불교사원과 이를 중심으로 부를 축척했던 거대기업들이 노란당이다. 방콕주위의 상인과 관광산업 종사자들과 일본등 외국 거대기업을 유치한 매판자본, 그리고 남쪽의 고무나무를 키우는 대농장지주 등이 지지세력이다. 말하자면 이번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노란당을 대표하는 격이다. 소위 왕당파다.

민주파인 빨간당은 중부지방 북쪽인 캄보디아,라오스 국경에 까까운 동북부와 미안마와 국경을 접하는 북부지역의 농민들이 지지세력이다. 노란당이 타이인의 주축인 떠이족이라면 빨간당은 중국이나 라오스인, 캄보디아의 크메르인 ,몽족등 소수부족등이 주 지지세력이다. 물론 태국경제의 큰 몫인 화교자본이 빨간당의 정치자금의 대부분이다. 탁신도 화교계로 분류되어왔다.

다시 탁신세력이 돌아올지 몰라 군부가 또 쿠데타를 했다. 이미 푸미볼(태국사람들은 리을 발음을 발못해 푸미볼을 흔히 푸미폰이라 부른다)국왕은 노쇄해 현실감각을 상실했는데도 기득권세력은 국왕을 내세워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

그래도 문제가 안되는 나라가 태국이다. 중국과 인도사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종주국이다. 가끔 인도지나반도의 패권을 두고 베트남과 티격태격하지만 제대로 붙은 건 아니다. 태국은 옛버마, 현재의 미얀마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근대에 들어 한번도 외세침략을 당하지 않은 중립외교의 천재라고 하지만 지금 방콕을 흐르는 차오프라야강을 100KM정도 북상하면 있었던 아유타야왕조가 버마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던 뼈아픈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다.

태국의 근대외교를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이리저리 몸을 굽혀야했다 해서 ‘대나무 외교’라고 불린다. 나라를 지키는 실용외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성으로는 치욕에 가까운 ‘칭찬’이다. 인간이나 국가나 적어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태국의 외교나 정치는 실리를 위해서는 명분과 원칙도 버릴 수 있는 박쥐외교, 실용정책으로 버텨왔다. 그것이 지금의 태국정정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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